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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속적,중생관과 순간적 중생관 비교..(수정5)

baromi 2007. 8. 22.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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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에서

(1) 검정색은 불신자의 상태입니다.

(2) 연두색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3) 파란색은 성령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애쓰게 함으로 사람이 애쓰는 것을 표시.

(4) 빨간색은 하나님의 단독적 사역입니다.

 

위의 그림에서 첫째는 아시다 시피 순간적 중생관입니다.

두번째 그림은 연속적 중생관입니다. 위의 그림은 순간적 중생관의 일회적 성령의 사역과

연속적 중생관의 이회적 성령의 사역을 구분하기 위해서만 그린 것입니다.

 

즉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위에서 보듯 순간적 중생관에서는 성령의 단독적 역사가 단 1회 나타납니다.

그래서 일회적입니다.

그 1회가 순간적으로 일어날때 효과있는 부르심과 중생과 회심(회개와 믿음)과 칭의 이렇게

4가지가 한꺼번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카이로스님의 말로는 셋트로...

즉 한박스 안에 들어있는 4가지 요소를 성령께서 한요소씩 주시는 것이 아니고

한 박스채 통채로 일회적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속적 중생관은 그것이 아니고

성령의 단독적 역사가 2회 일어나는데 바로 수태와 칭의때입니다.

이 2회 일어나는 기간은 "순간적"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볼때는 순간적 중생처럼

순간적으로 일회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엄연히 2회 성령의 단독적 역사가 순간적으로

나타나서 한번 일어난 것 처럼 보이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엄연히 두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연속적 중생관입니다.

 

위의 그림은 순간적 중생관과 연속적 중생관의 성령의 독단적 역사의 횟수가

일어나는 것만을 염두해서 그린 것이고..

 

밑의 그림은 연속적 중생관이 어떠하다는 성질적인 면을 그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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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연속적 중생관은 바로 위 그림의 밑에서 보듯이

수태와 칭의는 서로 분리가 된 것이 아니고 그 사이에

계속적으로 연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혜성의 머리 부분이 수태라면.. 혜성의 꼬리 부분이 칭의라고 한

피터마스터스의 글과 같이 한 몸체처럼 보이지만 성령의 단독적인

역사하심은 초기와 칭의때.. 그리고 그 중간에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한

사람들의 애씀이 있습니다. 즉 성령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애쓰게 만드시기에

사람이 성령의 목적을 향해 애쓰게 되는 것입니다.

 

순간적 중생관에는 인간의 애씀이 전혀 없습니다.

연속적 중생관에는 회심을 위한 인간의 애씀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애씀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그 마음에서 나오는 애씀이기 때문에

사람으로부터 기원한 노력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성화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성화에서 신인협력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독립적으로 하나의 일을 한다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까지 인도하시고 그 인도하심을 받아 인간은

애를 쓰는 것이기에 결국 인간은 구원을 얻기 위한 어떠한 공로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회심의 과정에서의 인간의 애씀과 성화시의 인간의 애씀에 대한 개념은

아래의 덧글에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수태와 새출생 사이에 인간의 노력이 무지무지 요청됩니다. 청교도들의 간증을 보십시오. 눈물겹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백하기를 자기의 그런 노력 때문에 구원이 주어졌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은혜를 강조하였지요.^^ new 23:11
그럼, 바로미님의 지적대로 회심 시의 인간의 애씀과 성화 시의 인간의 애씀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아야 하나요? new 23:15
회심시, 곧 수태와 새출생 사이의 애씀은 말 그대로 돌아섬의 애씀(endeavor of turning to God)이고, 성화시의 애씀은, 하나님을 향한 애씀(endeavor only toward God)입니다. new 23:17
turning이란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시면 어렵지 않습니다^^ 지옥을 향해 가다가 돌아서는 것을 자가용이 회전하는 식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비유입니다. 그 자리에 바로 뒤로 도는 것은 순간적 중생관이고, 어느 정도 반원형식으로 완만하게 도는 것은 연속적 중생관입니다. 지옥을 향해가던 사람이 천국을 향해서 돌아서게 되는 것이 돌아섬의 애씀이고, 그렇게 돌아선 사람이 천국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애씀입니다. 회심의 소극적인 측면과 적극적인 측면의 것들과는 다른 것입니다. new 23:23
돌아섬의 애씀은 일종의 방향 전환이고, 하나님을 향한 애씀은 그렇게 방향전환한 사람이 달려가는 것에 해당하겠군요. new 23:26

 

ㅎㅎ 리플들을 보면서 또 다른 오해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연속적 중생관에서는 1차중생의 상태를 구원에 이르게 되는 첫단계로 봅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이미 구원받은 것으로도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중생때를 구원에 이른 상태로 강조하는 것은, 1차중생을 싯점을 누구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지요. 마치, 영원전의 선택을 하나님께서 A라는 사람을 하셨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구원을 받는 싯점은 영원전이 아니고, 바로 예수님을 믿는 순간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수태시에 생명의 씨가 뿌려졌지만, 믿음과 회개로 반응해야만 new 10:11

그 사람이 구원에 이른다고 해야 합니다. 영원전의 선택을 받을 사람이 영원전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해야 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만약 영원전에 선택받았기 때문에, 영원전에 이미 구원까지 받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의 순서를 무시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는 이들이 바로 십자가마을의 이근호목사의 추종자들 중에 있는 줄 압니다만...ㅎㅎ 한우리님이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연속적 중생관에 대해서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리플을 붙여봅니다. ^^ new 10:13

 

나그네1님이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이군요. 무엇보다도 연속적 중생관은, '새출생'과 '성령세례'를 일치된 것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구원받지 못한 자가 '수태'한 것처럼 보여도 '새출생'에 이르지 못하게 될 때 그것을 성령의 '일반적' 사역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구원받은 자가 '수태'하여서 '새출생'에 이르게 되는 것에는 성령의'특별한' 사역이 있는 것으로 봅니다. 단지, 성령의 특별하신 사역으로 인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성령의 내주'와는 다른 것이라고 앞에서 제가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위의 성령세례에 대한 관점은 양무리마을의 연속적 중생관과 특별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신학대학원의 교 07.08.20 20:38

수님들께서 '연속적 중생관'이란 용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로는 이런 '연속적 중생관'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자신들의 중생관과 별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볼 줄 압니다. 만일 이런 용어나 개념들에 그 분들이 익숙하지 않다면, 그 분들이 이런 중생관에 익숙해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리고 '성령세례'에 대하여 한 말씀 드린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베푸시는 세례'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세례로서, 지금도 얼마든지 그 분의 택하신 자녀로서 구원받기로 예정된 이들에게 베푸시기를 원하시고 또한 베풀고 계시는 세례입니다. 이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07.08.20 21:18

성령세례와 성령의 내주의 시기가 모두 새출생과 동일한 시기이니, 성령세례 받으면 곧 성령께서 내주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는 것이군요? 성령세례 받고 나서 한참 후에 성령이 내주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와 동시에 성령의 내주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는군요? 수태한 것처럼 보여도 새출생에 이르지 못하게 될 때, 그것을 성령의 일반적 사역이라고 하고, 수태하여서 새출생에 이르게 되는 것에는 성령의 특별하신 사역이 있는 것으로 보구요. 호 목사님의 글을 읽으니까 명쾌해지네요. 연속적 중생관에 더욱 가까이 다가간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07.08.20 22:34

 

예외의 경우이지만 한 순간에 중생이 일어났다고 할때.. 

순간적 중생관과.. 연속적 중생관은 차이는 아래그림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순간적 중생관은 한 순간에 1회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고

순간적 중생관은 한 순간에 2회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주의 할점은 이 2회 역사는 중생이 2회 일어난다는 의미의 2회가 아닙니다.

시작과 완성.. 즉 수태와 칭의(출생)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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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바로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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