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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이드존즈의 성령론
baromi
2007. 1. 12. 07:31
로이드 죤즈의 성령론
로이드 죤즈가 가르쳤던 성령론의 특징은 세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성경적 증거에 충실했다. 그는 성경에 나타난 성령세례 관련구절을 그만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성경적 근거를 확보하였다. 로이드 죤즈에게 있어서 성경의 진리는 그 무엇보다 우선되는 원칙이었다.)로이드 죤즈, [성령세례], pp.19-20.
로이드 죤즈에 의하면 성령세례야말로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두드러진 교훈이며 진리라고 한다. 따라서 모든 신자들은 바로 이 축복을 추구해야 하며 오늘날 교회의 빈약함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성령세례의 체험을 통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 성경적 증거를 제시하기 원했고 그 누구보다도 방대한 성경적 해석을 그 만의 논리로 제시하고 있다.
둘째로 로이드 죤즈가 그의 성령론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한 또 하나의 도구는 교회사에 나타난 수많은 체험이었다. 그는 특별히 청교도들의 저작에 심취해 있었다.)박영호, op.cit., pp.102-105.
청교도들의 시대는 성령께서 특별히 간섭했던 시대이고 보면 로이드 죤즈는 자신의 성경해석을 입증해주는 자료로서 청교도들의 작품을 인용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비평가들은 로이드 죤즈가 인용한 방대한 청교도들의 간증에 대하여 "다양한 체험을 하나로 너무 쉽게 일치시킨다")고재수, op.cit., p.135.
고 비판하지만 로이드 죤즈는 그 모든 체험들이 비록 체험의 형태나, 표현하는 말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마지막으로 로이드 죤즈의 성령론의 특징은 그 형식에 있어서 설교집이라는 것이다. 그는 성령론에 대하여 한 편의 논문도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설교를 통하여 그 주제를 전개하였고, 나중에 그 설교들을 묶어 책으로 펴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책 속에는 성경원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어려운 신학적 용어도 사용되지 않았다. 또한 고재수 교수가 지적한 것과 같이)위의 책, pp.117-120.
인용한 자료가 제시되지 않거나 부정확한 것들이 많이 있다. 바로 이점이 연구자들이 로이드 죤즈의 성령론을 연구하는데 겪는 어려움이라 하겠다. 반면에 독자들에게 대부분의 교리서들이 갖는 무미건조함과 딱딱함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성령세례의 본질에 대하여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2.로이드 죤즈에게 있어서의 성령론이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
로이드 죤즈의 사상이나 신학에 대하여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는 일반적으로 감리교도적 열성을 가진 칼빈주의자로 알려져 있다.)크리스토퍼 캐서우드, [5인의 칼빈주의 지도자들], pp.141-142.
이것은 그의 신학의 두가지 특성을 나타내 준다. 첫째로 교리적으로는 칼빈주의자 였지만, 둘째로 그의 삶이나 목회의 방침은 감리교도적 열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강해설교 가운데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즉 복음만이 인류의 희망이라는 사실을 역설하였다. 그의 저서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주제가 있다.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리를 통해서는 죄의 속박으로 부터 신자의 영을 자유롭게 하는 것과, 성령세례의 교리를 통해서는 구원의 확신과 무미건조한 삶에서 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낌으로 살아있는 신앙을 소유하도록 촉구하였다. 성령세례의 교리는 로이드 죤즈의 모든 강해서에 폭넓게 나온다.)그의 대표적 강해서인 로마서 강해와 에베소서 강해에서 이 문제를 깊이 다룰 뿐만아니라, 요한복음 강해를 통해서도 성령세례의 문제와 은사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는 로이드 죤즈가 이 주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가 하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3.성령세례와 중생과의 관계
성령세례의 문제에 있어서 성령세례와 중생을 동일한 사건으로 보느냐, 아니면 서로 다른 사건으로 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보수주의 입장은 이 둘을 동일한 사건으로 보지만 성령세례를 체험으로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둘을 서로 다른 사건으로 본다. 로이드 죤즈 역시 중생과 성령세례는 분명히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둘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을 로이드 죤즈는 사역의 주체가 서로 다른 점을 지적하였다. 즉 중생은 성령의 사역이고, 성령세례는 그리스도의 사역이라는 것이다.)로이드 죤즈, [성령세례], p.22.
요한복음1:33에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는 그 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하신 이 말씀처럼 성령세례의 주체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셨다는 것이다.
중생과 성령세례가 또 다른 점은 중생은 비 체험적인 것이요,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변화시키는 은밀한 사역이지만, 성령세례는 우리가 분명히 감지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체험적 사실이라는 점이다.)위의 책., p.51.
성령세례의 체험적 성격을 증명하기 위해 로이드 죤즈는 몇 개의 성경적 증거를 제시하였다.)위의 책, pp.53-58.
①누가복음1:41-42 - 엘리사벳이 성령충만함
②누가복음1:67 - 사가랴의 성령충만
③사도행전2:4-13 - 사도들이 성령충만함을 입음
④사도행전4:8-31 - 베드로와 제자들이 다시 한번 성령충만을 받음
⑤사도행전6:5-10 - 집사 선택시 성령충만한 자로 선택
⑥사도행전11:15-18 - 이방인들이 성령충만함을 받음
이와같은 성경구절을 통하여 성령세례는 두드러진 체험이요 자신이나 타인이 모두 알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성령세례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뜨거운 논쟁점은 중생과 성령세례가 동일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이다. 성령세례를 인정치 아니하는 학자들은 오순절 성령세례가 단회적인 사건이며 중생 이후에 또 다른 체험이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로이드 죤즈는 성령세례는 중생과는 다른 것이며, 중생 이후에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주장하였다. 중생 이후에 성령세례가 일어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로이드 죤즈는 몇가지 성경의 예를 들었다.
①사도행전1:4-8 - 예수께서는 사도들이 성령세례를 받고 증인이 될 것을 약속하셨는데 사도들은 이미 이 때 중생한 상태였다.)사도들의 중생의 증거는 요15:3에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는 구절과 요20:22-23에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라고 하신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②행8:6-17 - 사마리아 지방의 신자들은 빌립의 전도를 받아 믿음을 갖게 되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행8:12). 이러한 믿음을 가진 이후에 8:4-17절은 그들이 사도들의 안수를 받음으로 성령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③사도행전9:1-15 - 사도 바울 자신의 경우도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났을 때 이미 믿음을 가졌지만 나중에 아나니아를 통하여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게 되었다.
④행19:1-6 -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가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하고 물었는데 흠정역(A.V)의 번역은 "너희가 믿은 이후에 성령을 받았느냐?"이다. 이 번역이 시사하는 것은 성령세례를 받지 않으면서도 믿을 수 있다는 것과 성령세례는 믿은 이후에 일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령세례를 알지 못하였고 바울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다.)로이드 죤즈, [성령세례], pp.26-31.
⑤에베소서1:13 -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 구절은 성령의 인침이 믿음 이후의 일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 이유는믿는다는 동사가 과거시제로 사용됨으로 해서 믿는 것과 인치는 것 사이에는 간격이 생기게 되어서 최소함 "믿고나서 막"이라는 의미를 나타내 주고 있다.)로이드 죤즈, [영적선택], pp.295-296.
따라서 이와같은 성경구절을 놓고 볼 때 성령세례는 믿은 이후에, 최소한 믿고나서 막 임한다는 것이 로이드 죤즈의 결론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로이드 죤즈의 견해를 요약하면 표1과 같다.)
*표1.로이드 죤즈가 본 중생과 성령세례와의 관계
+----+------+------+------+------+------+-----------+------+
| |사역의|사역의|사역의|사역의|구원과| |성령과|
| | | | | | |인 지 여 부 | |
| |주 체 |성 격 |내 용 | 시 점|의관계| |의관계|
+----+------+------+------+------+------+-----------+------+
| | |비 체 |내적이|구 원 |필 수 |알 수 없 음 | |
|중생 |성 령 | | | | | |내 주 |
| | |험 적 |며은밀|받기전|요 건 |또는 사후에| |
+----+------+------+------+------+------+-----------+------+
|성령 |그 리 | |외적이|중 생 |필수적|명 확 하 게 | |
| | |체험적| | | | |충 만 |
|세례 |스 도 | |며확실|이 후 |이아님|알 수 있 음 | |
+----+------+------+------+------+------+-----------+------+
참고로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학자들은 사도행전 2장, 8장, 9장의 사건을 성령의 최초 사역으로 규정하고 단회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또 사도행전 8장, 10장, 19장 사건들은 오순절 사건의 반복이 아니라 오순절 사건의 연장, 성령세례의 범위의 확장 내지 확대의 일부분, 혹은 오순절 약속의 단계적 분할 성취라고 보았다.)죤 스토트, [오늘날의 성령의 사역] 조병수역 (서울: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3), pp.28-39.
또 아브라함 카이퍼(A.Kuyper)같은 이는 "교회가 성령강림의 반복을 원하는 기도를 오순절에 드리는 것은 무의미하다"라고 한 후 이어 말하기를 "누구든지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자는 결국 오순절 이적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이미 오셨고, 우리 가운데 계신 이는 또 다시 우리에게 올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차영배, [성령론] "ⅩⅠ.성령강림을 위한 기도의 타당성을 부인한 A.Kutper의 견해 비평" (서울:경향문화사, 1989), p.243.
그러나 이와같은 견해는 자의적이고 비약적인 성경해석과, 원리를 지나치게 일반화시켰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였다.)위의 책, pp.244-246.
로이드 죤즈가 가르쳤던 성령론의 특징은 세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성경적 증거에 충실했다. 그는 성경에 나타난 성령세례 관련구절을 그만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성경적 근거를 확보하였다. 로이드 죤즈에게 있어서 성경의 진리는 그 무엇보다 우선되는 원칙이었다.)로이드 죤즈, [성령세례], pp.19-20.
로이드 죤즈에 의하면 성령세례야말로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두드러진 교훈이며 진리라고 한다. 따라서 모든 신자들은 바로 이 축복을 추구해야 하며 오늘날 교회의 빈약함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성령세례의 체험을 통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 성경적 증거를 제시하기 원했고 그 누구보다도 방대한 성경적 해석을 그 만의 논리로 제시하고 있다.
둘째로 로이드 죤즈가 그의 성령론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한 또 하나의 도구는 교회사에 나타난 수많은 체험이었다. 그는 특별히 청교도들의 저작에 심취해 있었다.)박영호, op.cit., pp.102-105.
청교도들의 시대는 성령께서 특별히 간섭했던 시대이고 보면 로이드 죤즈는 자신의 성경해석을 입증해주는 자료로서 청교도들의 작품을 인용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비평가들은 로이드 죤즈가 인용한 방대한 청교도들의 간증에 대하여 "다양한 체험을 하나로 너무 쉽게 일치시킨다")고재수, op.cit., p.135.
고 비판하지만 로이드 죤즈는 그 모든 체험들이 비록 체험의 형태나, 표현하는 말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마지막으로 로이드 죤즈의 성령론의 특징은 그 형식에 있어서 설교집이라는 것이다. 그는 성령론에 대하여 한 편의 논문도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설교를 통하여 그 주제를 전개하였고, 나중에 그 설교들을 묶어 책으로 펴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책 속에는 성경원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어려운 신학적 용어도 사용되지 않았다. 또한 고재수 교수가 지적한 것과 같이)위의 책, pp.117-120.
인용한 자료가 제시되지 않거나 부정확한 것들이 많이 있다. 바로 이점이 연구자들이 로이드 죤즈의 성령론을 연구하는데 겪는 어려움이라 하겠다. 반면에 독자들에게 대부분의 교리서들이 갖는 무미건조함과 딱딱함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성령세례의 본질에 대하여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2.로이드 죤즈에게 있어서의 성령론이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
로이드 죤즈의 사상이나 신학에 대하여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는 일반적으로 감리교도적 열성을 가진 칼빈주의자로 알려져 있다.)크리스토퍼 캐서우드, [5인의 칼빈주의 지도자들], pp.141-142.
이것은 그의 신학의 두가지 특성을 나타내 준다. 첫째로 교리적으로는 칼빈주의자 였지만, 둘째로 그의 삶이나 목회의 방침은 감리교도적 열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강해설교 가운데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즉 복음만이 인류의 희망이라는 사실을 역설하였다. 그의 저서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주제가 있다.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리를 통해서는 죄의 속박으로 부터 신자의 영을 자유롭게 하는 것과, 성령세례의 교리를 통해서는 구원의 확신과 무미건조한 삶에서 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낌으로 살아있는 신앙을 소유하도록 촉구하였다. 성령세례의 교리는 로이드 죤즈의 모든 강해서에 폭넓게 나온다.)그의 대표적 강해서인 로마서 강해와 에베소서 강해에서 이 문제를 깊이 다룰 뿐만아니라, 요한복음 강해를 통해서도 성령세례의 문제와 은사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는 로이드 죤즈가 이 주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가 하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3.성령세례와 중생과의 관계
성령세례의 문제에 있어서 성령세례와 중생을 동일한 사건으로 보느냐, 아니면 서로 다른 사건으로 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보수주의 입장은 이 둘을 동일한 사건으로 보지만 성령세례를 체험으로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둘을 서로 다른 사건으로 본다. 로이드 죤즈 역시 중생과 성령세례는 분명히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둘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을 로이드 죤즈는 사역의 주체가 서로 다른 점을 지적하였다. 즉 중생은 성령의 사역이고, 성령세례는 그리스도의 사역이라는 것이다.)로이드 죤즈, [성령세례], p.22.
요한복음1:33에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는 그 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하신 이 말씀처럼 성령세례의 주체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셨다는 것이다.
중생과 성령세례가 또 다른 점은 중생은 비 체험적인 것이요,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변화시키는 은밀한 사역이지만, 성령세례는 우리가 분명히 감지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체험적 사실이라는 점이다.)위의 책., p.51.
성령세례의 체험적 성격을 증명하기 위해 로이드 죤즈는 몇 개의 성경적 증거를 제시하였다.)위의 책, pp.53-58.
①누가복음1:41-42 - 엘리사벳이 성령충만함
②누가복음1:67 - 사가랴의 성령충만
③사도행전2:4-13 - 사도들이 성령충만함을 입음
④사도행전4:8-31 - 베드로와 제자들이 다시 한번 성령충만을 받음
⑤사도행전6:5-10 - 집사 선택시 성령충만한 자로 선택
⑥사도행전11:15-18 - 이방인들이 성령충만함을 받음
이와같은 성경구절을 통하여 성령세례는 두드러진 체험이요 자신이나 타인이 모두 알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성령세례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뜨거운 논쟁점은 중생과 성령세례가 동일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이다. 성령세례를 인정치 아니하는 학자들은 오순절 성령세례가 단회적인 사건이며 중생 이후에 또 다른 체험이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로이드 죤즈는 성령세례는 중생과는 다른 것이며, 중생 이후에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주장하였다. 중생 이후에 성령세례가 일어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로이드 죤즈는 몇가지 성경의 예를 들었다.
①사도행전1:4-8 - 예수께서는 사도들이 성령세례를 받고 증인이 될 것을 약속하셨는데 사도들은 이미 이 때 중생한 상태였다.)사도들의 중생의 증거는 요15:3에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는 구절과 요20:22-23에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라고 하신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②행8:6-17 - 사마리아 지방의 신자들은 빌립의 전도를 받아 믿음을 갖게 되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행8:12). 이러한 믿음을 가진 이후에 8:4-17절은 그들이 사도들의 안수를 받음으로 성령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③사도행전9:1-15 - 사도 바울 자신의 경우도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났을 때 이미 믿음을 가졌지만 나중에 아나니아를 통하여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게 되었다.
④행19:1-6 -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가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하고 물었는데 흠정역(A.V)의 번역은 "너희가 믿은 이후에 성령을 받았느냐?"이다. 이 번역이 시사하는 것은 성령세례를 받지 않으면서도 믿을 수 있다는 것과 성령세례는 믿은 이후에 일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령세례를 알지 못하였고 바울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다.)로이드 죤즈, [성령세례], pp.26-31.
⑤에베소서1:13 -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 구절은 성령의 인침이 믿음 이후의 일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 이유는믿는다는 동사가 과거시제로 사용됨으로 해서 믿는 것과 인치는 것 사이에는 간격이 생기게 되어서 최소함 "믿고나서 막"이라는 의미를 나타내 주고 있다.)로이드 죤즈, [영적선택], pp.295-296.
따라서 이와같은 성경구절을 놓고 볼 때 성령세례는 믿은 이후에, 최소한 믿고나서 막 임한다는 것이 로이드 죤즈의 결론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로이드 죤즈의 견해를 요약하면 표1과 같다.)
*표1.로이드 죤즈가 본 중생과 성령세례와의 관계
+----+------+------+------+------+------+-----------+------+
| |사역의|사역의|사역의|사역의|구원과| |성령과|
| | | | | | |인 지 여 부 | |
| |주 체 |성 격 |내 용 | 시 점|의관계| |의관계|
+----+------+------+------+------+------+-----------+------+
| | |비 체 |내적이|구 원 |필 수 |알 수 없 음 | |
|중생 |성 령 | | | | | |내 주 |
| | |험 적 |며은밀|받기전|요 건 |또는 사후에| |
+----+------+------+------+------+------+-----------+------+
|성령 |그 리 | |외적이|중 생 |필수적|명 확 하 게 | |
| | |체험적| | | | |충 만 |
|세례 |스 도 | |며확실|이 후 |이아님|알 수 있 음 | |
+----+------+------+------+------+------+-----------+------+
참고로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학자들은 사도행전 2장, 8장, 9장의 사건을 성령의 최초 사역으로 규정하고 단회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또 사도행전 8장, 10장, 19장 사건들은 오순절 사건의 반복이 아니라 오순절 사건의 연장, 성령세례의 범위의 확장 내지 확대의 일부분, 혹은 오순절 약속의 단계적 분할 성취라고 보았다.)죤 스토트, [오늘날의 성령의 사역] 조병수역 (서울: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3), pp.28-39.
또 아브라함 카이퍼(A.Kuyper)같은 이는 "교회가 성령강림의 반복을 원하는 기도를 오순절에 드리는 것은 무의미하다"라고 한 후 이어 말하기를 "누구든지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자는 결국 오순절 이적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이미 오셨고, 우리 가운데 계신 이는 또 다시 우리에게 올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차영배, [성령론] "ⅩⅠ.성령강림을 위한 기도의 타당성을 부인한 A.Kutper의 견해 비평" (서울:경향문화사, 1989), p.243.
그러나 이와같은 견해는 자의적이고 비약적인 성경해석과, 원리를 지나치게 일반화시켰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였다.)위의 책, pp.244-246.
출처 : 한우리성경강해
글쓴이 : 한우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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