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십자가마을에서 서로 같은 주장을 하면서도 서로 싸우는 이유는?
손무성목사는 성도의 가치를 강조하되 절대 십자가와 분리시켜서 성도를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손무성목사가 성도의 가치와 십자가를 분리시켜서 생각한다면 손무성목사는 참으로 이단일 것이다.
만일 손무성목사가 그런 식으로 성도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손무성목사를 몰라도 한참 모른다.
20년동안 한솥을 먹고 살았으면서도 왜 이렇게 손무성목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강조하거니와
손무성목사는 십자가와 성도를 한번도 분리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박윤진이라는 분은 '성도가 무엇인'라는 글을 올리면서 손무성목사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양 오도하고 있다.
'성도는 살아있다'면서 하는 말인 즉, 이렇다: "피뿌림과 성도를 구별하고자 하여 분리된 성도의 가치를 따로 챙길려고 하는 의도는 믿음과 행함을 구별하고자 하는 의도와 같다.즉,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 내가 받았으니 나의 행함으로 증명하여 보답하자!' 라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피뿌림 받은 귀한 성도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가치에 맞는 행함과 복 누릴 권리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박윤진이라는 분은 손무성목사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정곡을 찌르지 않고 손무성목사라는 허수아비를 자기 속에 만들어놓고 찌르고 있는 셈이다.
어리석은 짓이다. 허수아비를 찌르면 어디 허수아비가 아프다고나 하나?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오히려 찌르는 그를 보면서 웃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박윤진이라는 분은 옳은 얘기를 한다.
"피뿌림과 성도를 구별하는 자
'이미' 성도 아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원래' 성도 아니다."
옳은 말을 했다.
문제는 이 말을 손무성목사도 할 것이라는 것이다. 박윤진이라는 사람 머리 속에 있는 허수아비는 이것을 알지 못할 지 모르지만, 손무성목사는 정확하게 이것을 알고 있다.
서로가 같은 것을 주장하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있는 것 같을까?
바로 그 가운데 이근호목사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근호목사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근호목사가 주장하고 있는 그 신학이 문제이다.
박윤진이라는 분은 이근호목사의 신학에 근본적인 문제가 없다고 본다.
손무성목사는 이근호목사의 신학의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본다.
이렇게 이근호목사의 신학에 대한 견해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박윤진이라는 분이 그것을 감지하고는
손무성목사의 견해를 거의 무조건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왜 같은 주장을 하면서도 반대를 하는가
진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손무성목사가 이근호목사의 견해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솔직해 보시라.
진리가 중요한가
이근호목사의 신학이 더 중요한가
이근호목사의 신학이 진리라고 주장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진리와 진리가 서로 맞싸우고 있는가?
십자가마을에서 변증법적 진리를 위해서 그토록 싸워왔었는가?
십자가의 진리가 아니던가
생각해 보시라.
십자가의 진리가 더 중요한가
이근호목사의 십자가신학이 더 중요한가
십자가의 진리가 곧 이근호목사의 십자가신학이요
이근호목사의 십자가신학이 곧 십자가의 진리이라고 주장하고 싶은가
아서라.
그렇다면, 왜 십자가의 진리가 이근호목사의 신학과 맞서서 이렇게 혈기를 드러내고 있는가?
왜 같은 주장을 하면서도 왜 서로 다른 것이라고 싸우고 있는가?
그 가운데 이근호목사(신학)가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십자가"가 있다면 싸울 수가 없다.
모두 십자가 안에서 녹아내려 버리기 때문이다.
귀있는 자는 들은진저!
양무리마을 홀리죠이
(양무리마을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