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Re:`교회가 복지재단을 운영하는 문제`에 관하여 (이광호 목사)
http://www.salthouse.pe.kr/letter1-6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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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부산대학교에 재학중이며 SFC 활동을 하는 손재익 형제의 질문에 대한 이광호 목사님의 답신입니다)
손재익 형제, 안녕하세요? 고향이 창원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쯤 방학을 하여 본가에 가 있겠군요? 부모님과 가까이 있으면서 모교회를 중심으로 좋은 시간 보내기를 원합니다. 지난번 형제가 저에게 상당히 민감한 질문을 했었는데 이제 그에 대한 답변을 해볼까 합니다. 마침 광주 개혁교회의 이주헌 형제도 비슷한 질문을 해왔기에 모두에게 약간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실 우리 시대에 있어서 이런 문제에 대한 접근은 매우 부담스럽습니다. 교회가 그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상실하여 세상에서 진정한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윤리적인 것이 강조되기 마련인데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의 많은 대형 교회들은 다양한 특별재단들을 운영하고 있으며, 규모가 작은 교회들은 그것을 부러워하기도 하며 꿈꾸기도 합니다. 그런 비전을 가진 이들은 세상을 향한 복지사업이 교회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요구라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가 그런 복지사업을 해야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사업을 장려하거나 운영한 예가 있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교회들 중에 그런 류의 복지사업을 주도하거나 참여한 예가 없을 뿐더러 그것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이나 그의 제자들의 사역 가운데서 그런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이나 베드로 등 제자들이 로마제국의 여러 지역을 방문하며 복음을 증거하지만 복지정책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구약시대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 에스겔 등 모든 선지자들의 관심은 오로지 메시야와 관련된 복음이었습니다.
우리시대에 있어서도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해야할 사명과 교회에 속한 개인 성도들이 삶 가운데서 실천해야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교회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세상과 구별된 자기 모습을 정결하게 보존해 가는 것이 본질적 사명입니다. 그것을 위해 매 주일마다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복음의 핵심적 본질을 벗어나 세상과 관련된 사업을 추구하게 되면 외형에 치중함으로써 중요한 본질적 사명을 약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 가운데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가 굳건히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에 잘 순종하는 성도들은 이 세상 가운데 살면서 자연스럽게 이웃을 보살피게 될 것이며 각 자의 형편에 따라 세상에서 행해야 할 자기 몫을 넉넉히 감당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저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이웃에 대해 관심이 부족한 것 같고 구제에 대해 무관심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현재 그런 복지사업을 주도하는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나 지도자들은 저를 못마땅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대로 이런 민감한 내용을 언급하는 것이 부담스런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교회가 할 일은 말씀선포와 성례의 시행, 그리고 교회를 지키기 위한 권징사역의 이행입니다. 그를 통해 성도의 삶 가운데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복음전파와 구제에 참여하는 생활입니다. 즉 교회는 복음의 본질을 추구하고, 복음을 아는 성도들은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특정 분야에 관심있는 성도들이 모여 함께 의논하며 조직화하여 이웃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은 또 다른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를 para-church라 하기도 하는데 교회가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있는 성도들이 뜻을 모아 봉사하는 것입니다. para-church는 교회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지는 않지만 성경의 가르침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사회복지단체 뿐 아니라, 일반 선교단체도 개 교회가 운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굳이 선교단체를 설립하지 않더라도 교회는 당연히 말씀을 선포하는 선교적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교회들 중에는 교회가 직접 운영하는 다양한 복지 차원의 조직체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건전하고 좋은 조직체들입니다. 평생교육원, 노인대학, 선교원, 재활원, 영어교실, 병원, 마을금고 등등...... 그러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것 이외의 제도나 조직을 방편 삼아 교회를 활성화하거나 성장을 꾀하는 것은 과거 전통적인 교회들에는 있지 않았습니다. 노회나 총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당회, 노회, 총회를 치리회라 하는데 치리회의 임무는 복지나 사회적인 사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참되게 세우고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기관들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복지정책이 불필요하다거나 사회사업에 무관심해도 좋다는 그런 의미가 아님을 유념하셨으면 합니다. 그런 일은 교회가 조직적으로 운영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각 성도들이 삶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이루어 가야 할 몫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안타까운 이웃과 삶을 나눌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그런 기관을 운영할 때 어린 성도들은 기관을 통해 모든 것을 대행시키려는 생각에 젖어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주변의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이나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으로부터 점차 멀어질 우려 마저 생겨날지 모릅니다. 그리고 사회복지에 대해서는 기독교 뿐 아니라 불교나 이슬람교 등 이방 종교들이나 이단 종파들 역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유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복음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 일반적인 일을 교회가 사업화 하여 운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말뜻을 잘 알아들으리라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맺을까 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2003. 6. 28 이광호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