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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회심자료]손양원목사의 가정교육에 대한 기독교교육신학적 해석/나두선

baromi 2006. 9. 2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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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良源 牧師의 家庭敎育에 대한 基督敎
敎育 神學的 解析
- Horace Bushnell의 家庭敎育 理論을 中心으로 -



目 次

제 1 장 서 론 1
제 1 절 문제 제기 및 연구목적 1
1. 문제의 제기 1
2. 연구의 목적 4
제 2 절 연구의 필요성과 부쉬넬과 손양원의 관계성 5
제 3 절 연구의 의의와 방법 및 연구 범위 18
제 4 절 선행 연구 고찰 21
제 2 장 기독교 가정의 교육적 역할과 사명 23
제 1 절 가정의 정의 23
제 2 절 교육의 정의 24
제 3 절 가정교육의 중요성 26
제 4 절 기독교 가정의 교육적 사명 28
제 5 절 가정의 교육적 역할 31
제 3 장 호레이스 부쉬넬의 가정교육론 이해 36
제 1 절 부쉬넬의 생애와 신학 사상 38
1. 부쉬넬의 생애 38
2. 부쉬넬의 신학사상 구조 40
제 2 절 부쉬넬의 교육 사상 45
1. 아동 이해 45
2. 부모 이해 47
3. 유아 세례 이해 49
4. 기독교적 양육 50
제 3 절 부쉬넬의 가정교육관 52
1. 교육의 목적 52
2. 교육 내용 53
3. 교육의 방법 55
제 4 절 부쉬넬의 가정교육론 평가 58
1. 공 헌 59
2. 비 판 60
제 5 절 호레이스 부쉬넬의 기독교 가정교육 관점 61
1. 유기적 관계 62
2. 회심과 양육 64
3. 아동의 본성 65
4. 부모의 역할 65
제 4 장 손양원 목사 가정의 가정 교육론 이해 67
제 1 절 손양원 목사의 생애와 사상 67
1. 생 애 67
2. 손양원 목사의 신앙사상 74
1) 신앙사상 형성의 배경 74
2) 신앙 사상 구조 91
제 2 절 손양원 목사의 교육 사상 103
1. 교육사상의 교육적 기저 103
1) 아동 이해 103
2) 부모 이해 107
3) 세례론 이해 110
2. 교육 사상 112
1) 오직 하나님의 은총사상 112
2) 하나님 중심 사상 113
3) 성경중심 사상 114
3. 교육의 목적과 내용의 정의 116
1) 교육의 목적 116
2) 교육의 내용 118
제 3 절 손양원 목사의 기독교 가정교육론 117
1. 가정교육의 내용 118
1) 성경중심 교육 118
2) 도덕과 생활교육 (全人교육) 130
3) 애국 애족 교육 138
2. 교사로서의 부모, 손양원 목사 140
3. 교육 방법 141
1) 신앙의 생활화 방법 142
2) 대화의 방법 144
3) 기도의 방법 146
4) 절제에 의한 신체 양육의 방법 147
5) 칭찬과 격려의 방법 148
6) 부모자신의 모범에 의한 실천교육의 방법 150
7) 사랑의 방법 155
4. 교육실천가로서의 손양원 목사 158
1) 하나님 사랑 ,말씀사랑 실천 158
2) 인간사랑 실천 160
3) 애국 애족 실천 163
제 4 절 손양원 목사의 가정교육론 평가 164
1. 긍정적 평가 164
1) 기독교적 양육과 회심의 이원론적 교육방법 164
2) 그리스도를 닮은 모범적 교사로서의 부모 손양원 169
3) 교육의 장(場)으로서의 가정, 교회 학교 및 삶의 현장강조 169
4) 교육 실천가로서의 실천적 교육실시 171
5) 전인격적 가정교육 지침서로서의 옥중서신 173
6) 체벌 금지 174
2. 부정적 평가 175
제 5 장 기독교 가정교육을 위한 시사점 177
제 1 절 손양원 목사 가정교육론에 조명된 현대가정의 문제 177
1. 비인격적 집단으로서의 가정 177
2. 교육 부재로서의 가정 178
제 2 절 손양원 목사 가정교육론이 조명하는 현대기독교 가정교육의
문제점 및 해결방안 179
1. 자녀에 대한 부모의 무관심문제 179
1) 어린이 사랑 180
2) 어린이 존중 181
3) 어린이 영접 182
2. 회심과 양육의 이원론적 교육의 문제 182
3. 신앙의 유산 문제 183
4. 전인 교육(全人敎育) 문제 185
5. 부모의 경건 문제 186
6. 부모의 교육 실천 문제 187
제 3 절 현대 기독교 가정 교육을 위한 새로운 방향 모색 188
제 6 장 결 론 192
참 고 문 헌 199
영 문 초 록 204
국 문 초 록 210
부 록 (附 錄) 215

제 1 장 서 론



제 1 절 문제 제기 및 연구목적

1. 문제의 제기

교육의 내용과 교육의 과정이 만나는 곳을 장(context)이라고 한다면 어디에서 교육이 일어나느냐 하는 질문은 그 교육의 성격을 이해하고 방법을 모색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 '가정'은 역사를 이루어 왔던 인간들의 삶의 장(場)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육의 현장이었다. 곧 인간의 역사와 문화의 생존은 가정을 공동체로 하여 이루어져 왔으며, 부모와 자식사이의 관계, 상호작용 속에서 이어져왔던 것이다. 기독교 교육의 3대 중요기관은 학교와 예배드리고 교제하고 친교를 이루는 교회와 그리고 가정이다라고 본다. 그러나 그 중에서 교육목표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것은 가정이라고 본다.


교회와 학교가 교육 상태를 보충할 수 있으나 그것은 결코 교육에 있어서 가정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가정은 최초의 학교이며 부모는 최초의 교사라고 말할 수 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본적인 공동체로서 교육과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곳 임에는 틀림이 없다. 가정은 국가, 사회,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다. 가정을 통하여 바람직한 인간관계, 윤리의식,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삶의 지혜와 도리를 터득하게 된다고 본다.


가정은 인간 형성이 이루어지는 교육의 현장이다. 인간은 누구나 가정이라는 만남의 장소를 통해서 삶의 과정에 필요한 기초적인 행동 양식을 배우고 인격을 형성해 간다. 그래서 가정은 부모들로 하여금 사랑과 헌신과 시간과 사려 깊은 주의와 인내심으로 자녀들을 바르게 교육시키는데 필요한 장(場)이라고 본다.
호레이스 부쉬넬(Horace Bushnell)에 있어서 기독교 교육이란 단절이 아니라 계속되는 과정이고 양육이며 성장인 것이며 회개라는 순간적 돌변보다는 인간은 나면서부터 언약공동체인 “가정”이라는 유기체를 통해서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가정은 하나님이 직접 짝지어서 이루어 주시는 공간이요 인간이 파괴해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오늘날 가정은 이와 같은 본래적인 의미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초래된 가정부재 현상은 가정교육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오늘날 현대가정의 붕괴와 분열의 내적 요인은 가정의 기능 쇠퇴와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제도로 변하면서 세대간의 대화부족과 단절로 인한 교육부재 현상을 들 수가 있다. 또한 정신적 가치보다는 물질적 가치와 만족만을 추구하는 가치관의 전도와 이기주의 등 가치관의 혼란과 사랑결핍의 요인이 현대가정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으며 외적인 요인은 사회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환경적 요인을 들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공업화 도시화 분업화 전문화의 경향에 의하여 생활의 중심이 다원화 되고있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전통적 가정이 담당하고 있었던 기능들의 대부분이 가정 밖의 전문기관들 즉 학원, 교회, 학교, 기업, 매스미디어 등에 위임됨으로써 가정은 극히 적은 기능만을 담당하는 부분적 전문 기관화 되어가고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현대가정은 가정의 제1차적 전통적 성격인 공동사회의 성격을 상실하고 이익사회라는 제2차적 집단화 되어가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부모와 자녀사이에 대화가 단절되며 설사 대화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과거 전통적 가정 속에서의 대화와 같은 지적 도덕적 신앙적 성장과는 거리가 먼 대화인 까닭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현대 비기독교 가정뿐만이 아니라 기독교 가정까지도 가정교육과 가정 신앙교육이 부재하다. 전경련 자유 기업 센터의 여론조사에서 수도권 지역의 주부들 가운데는 자녀가 부모의 의견을 따르기 바라는 순종요구형과 자녀가 하고 싶은 데로 내버려두겠다는 자유방임형의 수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들은 농경사회 속에서 특히 가족 중심적 유교적 전통 속에서 가정공동체가 삶의 기본적 틀이 되어왔던 우리민족에 있어서 조차 현대산업화 과정에서 전통적 가정공동체가 붕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자유주의 민주주의 등 현대사회의 구조적 조건 속에 전통적 가치관과 조화되지 못하고 가치관의 갈등 혼란을 가져와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계를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 가치공동체와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는 가정교육의 부재를 가져오고 나아가 심각한 사회적 타락을 가져와 비인간화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와 혼란의 원인은 개화교육 이후의 갑작스러운 과거와의 단절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적 문화의 단절과 외래문화의 무비판적인 수용에서 그 요인을 찾아볼 수 있다. 즉 전통적 가정교육의 가치관이 사회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재해석되는 구체적이고 점진적 과정이 이루어지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현대가정은 입시위주의 교육, 여성들의 사회진출로 인한 가정에서의 자녀교육 시간의 제한 등은 지적 교육만을 강조하게 되었고 생활습관 교육이나 가치교육 신앙교육 등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사회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 일차적 책임을 가정에 돌리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현상은 가정이 그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서일 것이다.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의 차이는 명확하다. 건전한 가정교육 없이 학교교육, 나아가서 사회교육은 불가능하다. 가정에서 부모가 어떠한 배려와 교육을 한다해도 학교교육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처럼, 학교가 가정교육을 대신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오직 학교와 가정이 연합하여 전인교육을 이루어야 한다. 학교가 지식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능적 집단이라면, 가정은 생활전반에 걸친 기본적 사람됨의 교육을 하는 초기능적인 집단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가 오늘날처럼 산업화가 되기 이전에는 가정의 교육적 통제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요사이는 종래 가정에서 하던 가정교육을 가정, 가정 이외의 그 어느 곳에서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비록 가정이 예전과 같은 교육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신앙적, 도덕적 교육의 통제력을 가정이 잃고 있다면 가정 밖의 어느 기관(교회, 학교 등)도 마찬가지로 그 규제력을 잃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기대하고 의지할 곳은 가정이며 이를 대신할 다른 곳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독교 가정교육이나 일반 가정교육, 도덕교육 등은 체계적인 이론 교육이 아니라 부모에 의한 삶의 모범의 교육이요, 실천적 교육이요, 시청각 교육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가정교육, 일반 가정교육, 도덕교육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하여 가정과 교회, 학교 등이 서로 협력하여 나아가야 할 따름이다. 부쉬넬의 가정교육론도 이러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 연구의 목적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문제들로 인하여 붕괴되고 있는 가정공동체를 기독교교육의 살아있는 교육 현장으로 재건하는 일이 절실히 요청된다면 가정을 가장 중요한 교육 현장으로 보고 기독교 가정교육론을 편 호레이스 부쉬넬(Horace Bushnell)의 이론과 아울러 초기 우리 나라 전통 기독교 가정으로서 기독교 복음이 우리 나라에 처음 전래된 당시 복음을 받아들인 손종일 장로에 의해 그의 아들 셋(양원, 문준, 의원) 모두를 철저한 신앙교육으로 목사가 되게 하여 주님의 사명을 감당케 하였고 그 중에서 특히 위대한 경건의 사람, 훌륭한 전도자, 위대한 신앙의 용사, 사랑의 사도,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쓰는 빛나는 순교자로 평가받게 된 손양원 목사, 그는 그의 두 아들 동인, 동신 군이 부모님의 신앙교육 실천을 위해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공산주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일 등으로 한국 기독교 가정교육의 위대한 승리자요 또한 위대한 기독교 가정교육 실천자가 된 손양원 목사의 가정 교육론은 오늘의 상황에 비추어 재해석되고 음미되어 마땅할 것이다.


그 동안 산업화, 기계화 문명에 따른 영향으로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 개인주의 등으로 비인간화되어짐에 따라 가정 부재, 가정교육 부재 등의 이유를 들면서 가정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에 따른 학술논문도 연구된 바가 많다. 그러나 기독교 가정 교육론 연구 분야를 살펴보면 주로 외국의 기독교 교육학자들의 가정 교육이론과 방법에 관한 연구이거나 또는 구약시대 유대 민족의 가정교육에 관한 연구 등이 주종을 이루었다. 지금까지 본 논문 연구자가 알기로는 전문적인 기독교 교육학자의 가정교육이론을 중심으로 한국의 초기 전통적 기독교 가정의 가정교육을 표본으로 삼아 연구된 논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정교육은 체계적인 이론에 의한 교육은 아니다. 가정교육은 삶의 실체요, 생활화가 되어야 하며 실천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초기 한국 기독교 가정교육의 모범을 보인 손양원 목사 가정을 표본으로 선정하여 기독교 가정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부쉬넬의 가정교육이론에 조명하고 적용시켜 현대 기독교 가정 교육에 모델이 되게 함이 본 논문 연구의 목적이다.

제 2 절 연구의 필요성과 부쉬넬과 손양원의 관계성

전통이란 먼저 세대로부터 후대에 이어져 내려와 현재 세대의 존속과 발전에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순간적으로 유입되었다가 사라지는 유행과는 다르다. 전통은 그 강한 힘을 기저에 갖고 후대에 대하여 규제력으로 작용하며, 그 영향력은 한 집단의 문화 발전에 일관적이고도 지속적이다. 이것은 정신적인 유전이라고 할 수 있으리 만한 원동력으로 후대에 미치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교육민족이다. 신앙은 교육, 인간개발, 하나님 백성 개발을 위한 집념이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흩어진 민족이며 고난과 역경 속에 있었다 하더라도 뚜렷한 형태로서 외부에 나타나진 않았으나 강력하고도 우수한 세계적 지배권을 유대인은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민족의 정체성(identity)을 가지고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초기 한국 전통 기독교 가정으로서 가정 신앙교육에 커다란 모범을 보인 손양원 목사의 전통적 기독교 가정교육론이 현대 기독교 가정과 일반 가정에 신앙적, 정신적 유전의 원동력이 되게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손양원 목사는 기독교 교육 사상을 체계화하여 정립한 기독교 교육학자는 아니다. 그러나 교육실천가로서 의의를 가진다고 본다. 손양원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살았고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성경대로 가르치고 실천하는데 목숨을 바치기까지 한 교육실천가였다. 손 목사는 기독교 교육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가정교육론을 전문 기독교 교육학자이며 신학자이자 가정 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부쉬넬의 가정교육론에 조명하여 봄으로써 학문적 가치를 발견하는 동시에 거기서 발견되어진 손양원 목사의 가정교육론의 새로운 틀 위에서 현대 기독교 가정과 가정교육의 문제점을 파악하여 가정교육의 새로운 방안을 제시코자 한다.


초기 한국 전통 기독교 가정 중에서 손양원 목사 가정을 본 논문에서 표본으로 설정한 이유는 다른 어떤 가정보다도 가정신앙교육과 도덕교육 등 전인교육이 손양원 목사의 가정만큼 실천적으로 아버지와 아들들이 순교하면서까지 대대로, 철저히, 실패 없이, 가족단위로 실행되어지는 가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손양원 목사 가정의 가정교육론은 부쉬넬의 가정교육론에 조명해 볼 때 비록 손양원 목사가 기독교 교육학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가정교육 내용과 방법 등은 상당한 학문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손양원 목사 가정의 가정신앙교육은 현대 한국 기독교 가정과 교회가 시급히 수용하여 기독교 가정신앙교육을 회복하고 경건의 삶을 생활화하여 성경대로 사는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손양원 목사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그를 평가하는 자들에 의하여 훌륭한 목회자, 사랑의 사도, 위대한 순교자 등으로는 조명과 평가가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는 기독교 신앙교육자 및 가정신앙교육 실천가로서는 평가와 조명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본 논문 연구자는 본 논문에서 손양원 목사를 기독교 가정신앙교육자 및 교육실천가로 평가와 조명을 하려고 하며, 이 기본적인 가정교육 원리와 기독교 교육 철학 원리를 가지고 그의 기독교 신앙교육이 이루어졌는가를 연구하려 한다. 손양원 목사의 기독교 가정 교육원리와 기독교 교육 철학의 원리를 살펴보고 그것의 장단점은 조명하고 평가하되 그 평가의 기준의 틀로 호레이스 부쉬넬의 기독교 가정교육론을 사용코자 한다. 호레이스 부쉬넬의 기독교 가정교육론을 손양원 목사의 기독교 가정교육론의 평가와 조명에 사용코자 하는 이유는 부쉬넬이 가장 대표적인 기독교 가정 교육론자일 뿐 아니라 그의 교육사상에서 손양원 목사와 마찬가지로 칼빈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으며 시대적 배경에 있어서도 심령 대부흥과 그 이후에 따르는 양육의 필요성이 교차되는 시기에 목회 및 가정신앙교육을 실시 및 실천했던 점 등에서 의미있는 비교와 연결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 호레이스 부쉬넬의 기독교 가정교육이론을 사용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호레이스 부쉬넬이 가장 대표적인 기독교 가정 교육론자이나 손양원 목사는 기독교 교육이론을 정립한 기독교 교육자가 아니기 때문에 호레이스 부쉬넬의 기독교 가정교육론에 조명하여 그의 가정신앙교육론의 학문적 가치를 평가해야 하며, 둘째로는 부쉬넬과 손양원 목사 둘 다 칼빈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는 점이며, 셋째로는 부쉬넬 시대의 대각성 운동과 손양원 목사 시대의 대부흥 운동의 영향의 차이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면 다시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설명코자 한다.


첫째로 호레이스 부쉬넬은 대표적 기독교 가정 교육론자이다. 부쉬넬의 신학이 내재주의적이고 인간이해가 낙관적이며, 교육의 장을 가정으로만 국한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는 기독교 가정교육의 기초적 이론과 실제를 제시하고 나아가 기독교 교육을 학문의 시대로 개관하였다는 점은 큰 공헌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의 가정들이 가정의 존립을 위협하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세력들에 대항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계속적으로 가정생활이 문제되는 시점에서 부쉬넬의 기독교 가정교육 사상은 재평가되어져야 하며, 생활로서 기독교 신앙을 전달하기 위하여 '교육의 장(場)'으로서의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부쉬넬이 주는 기독교 가정교육론의 의미는 실로 크다고 본다.


우리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손양원 목사는 가정을 장(場)으로 한 기독교 가정교육론을 편 부쉬넬과는 달리, 가정을 중요시 여기지 않았으며 가정 신앙교육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손양원 목사가 신사참배 거부로 6년간 감옥에서 옥중 생활을 했으며, 부흥집회 인도 차 가정을 많이 떠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지 모른다. 6년간의 옥중 생활로 가족 전체가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고 자녀들은 학업을 중단하는 비극을 겪어서 거의 가정이 파괴되어 지는 상태였으니, 손양원 목사는 가정보다 교회를, 사회와 국가를 더 중요시했다고 할 지 몰라도 본 논문 연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손양원 목사는 가정을 매우 중요시하였으며 자녀들의 가정 신앙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가정교육을 실시하고 실천하였다고 본다. 단지 본 논문 연구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손양원 목사는 사랑의 우선 순위 결정에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이고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두번째라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자기의 가족과 가정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정을 사랑하지 않고 가정은 자기의 희생 밖의 영역, 무관심의 영역이 아니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나라는 인간 자체는 내 집(가정)을 위하여, 내 애양원 교회 위하여, 대한의 기독교를 위하여 오직 신영(神榮)만 위하여 나 자체는 녹아지고, 썩어지고, 낮아지고, 죽어지는 희생 자체가 되게 하소서. 나의 가족을 위하여 내 일신(一身)을 희생시키는 애자(愛子)가 되고, 나의 교회를 위하여 나의 일신(一身), 일가(一家)를 희생시키는 애자(愛子)가 되고, 내 주 위하여는 일신(一身), 일가(一家), 일교회(一敎會)까지 희생하고, 우리 만국 만민의 하나님을 위하여는 모든 일체를 희생하는 애자(愛子)가 되고 싶다.

손양원 목사는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감옥생활을 하지만 그의 옥중 서신의 내용을 보면 가정과 가족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가를 알 수 있다. 특별히 그의 자녀들에게 신앙교육과 도덕교육을 위하여 쓴 서신들의 내용을 보면, 그 사실을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손양원 목사는 부쉬넬과 마찬가지로 가정을 장으로 하는 가정신앙교육을 매우 중요시하였으며, 가정에 큰 관심을 기울였기에 호레이스 부쉬넬의 가정교육론을 손양원 목사의 가정교육론의 평가의 틀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는 기독교 신앙교육은 가정과 교회, 사회 등으로 확대되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둘째로 부쉬넬과 손양원 목사 둘 다 존 칼빈(John Calvin) 교리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는 점이다.
부쉬넬의 신학은 그 시대의 여러가지 요인의 결합에서 이루어진 소산으로서 제네바의 칼빈의 하나님 주권에의 절대 복종, 반종교개혁 시기에 있었던 초기 개신교와 로마 카톨릭주의 간의 충돌,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서의 청교도의 경건주의와 정치적 변혁, 메사추세스에서의 요나단 에드워드의 칼빈주의 신앙을 근거로 한 부흥 운동을 주도로 한 설교 등의 모든 것이 그의 신학을 낳게 한 요소들이다. 부쉬넬의 신학은 엄격한 칼빈주의였다. 부쉬넬의 신학이 정통주의 신학을 거부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의 신학이 정통주의 신학을 거부했다고 보기보다는 부쉬넬의 의향은 그 신학적 스타일을 고쳐보고자 하는 데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칼빈주의의 정통성을 계승받았지만, 부쉬넬은 전통과 정통에만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칼빈주의를 새로운 비판정신과 시대적 상황의 문제 속에서 재해석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대각성 운동의 심판적 권위주의의 신앙에 대한 반발로 '기독교적 양육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부쉬넬이 칼빈의 교리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손양원 목사도 부쉬넬과 같이 칼빈 교리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손양원 목사의 신앙은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고 해석하는 초대 한국교회의 보수주의 신앙 노선과 일치하였으며, 철저한 칼빈주의적인 신학과 신앙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손양원 목사의 '체형조서'에는 소화 16년(1941) 7월 19일 여수 경찰서 조선 총독부 전라남도 순사 금성구웅(金城久雄)이 광주 지방법원 검사장 원교효태랑(元橋曉太郞)에게 보낸 의견서가 나타나는데, 여기서 금성구웅은 범죄사실을 언급하면서 손양원 목사의 설교를 문제삼았다.

손양원이 대정(大正) 12년 3월경에 신구약 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탐독하면서, 전도와 설교를 한 것이 뚜렷한 범죄였다는 것이다. 이 의견서에서 성경관, 신관, 세계관, 국가관, 말세관, 기독 재림관 등으로 자세히 논하고 있다. 그들이 조서를 꾸민대로 본다면 손양원 목사의 사상은 철저히 칼빈주의적 신학과 신앙을 소유하였다.

손양원 목사는 칼빈 사상의 핵심인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이 크게 영향을 미쳐서 일생동안 하나님 중심 사상, 성경 말씀 중심 사상으로 일생을 하나님 목전에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아갔다. 손양원 목사의 제 1회 피의자 심문조서에는 손 목사가 칼빈 사상의 핵심인 하나님 절대 주권 사상이 나타남을 볼 수 있다.
'기독신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라는 일본 심문관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1.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2. 하나님은 의이시다. 3. 하나님은 빛이시다. 4. 하나님은 영이시다. 5. 하나님은 만물 창조자이시다. 6. 하나님은 주재자이시다. 7. 하나님은 말세에 있어서 만민의 심판관이시다….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시라 함은 천지만물은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하신 물건이다…. 고로 세계 각국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지도되어 운전되는 것이다. 천조대신은 아국 선조의 신이라고 하나 실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 지배, 지휘하에 있다. … 하나님이 주재자이시라 함은 여호와 하나님은 일월성(日月星) 삼광(三光)을 운전하시는 신이시다. 연월일의 운행도 하나님의 장중에 있는 것이요, 인생의 생사도, 사람의 운명도 여호와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 다. 일본 천황은 사람이다. 고로 사도행전 17장 25절에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에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함 과 같이 천황도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생명과 호흡, 또 만물 즉 국토, 국민, 재산, 일본을 통치할 천황의 지위급, 통치할 권력도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다.

칼빈사상의 핵심인 하나님 절대주권성을 분명히 밝혔다. 이러한 사상을 가진 손양원 목사는 언제나 그의 중심사상에 하나님과 더불어 생각을 하며, 삶의 전체의 걸음걸이가 하나님의 목전에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전 생애와 활동범위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의해서 정리, 정돈되어졌으며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였기에 오직 그의 일생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복종하면서 살아갔고,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었다. 손양원 목사는 그의 전체의 삶이 오로지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하나님만의 삶이었다. 그는 하나님만이 희망이요, 기쁨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소유, 재산, 유업, 허락, 나는 이 외에 기쁨이 없다."


부쉬넬이 그의 신학 형성과 기독교 교육을 위한 가정교육론을 강력하게 주장하게 된 이면에는 두 가지 큰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그 하나는 "부쉬넬의 어린 시절에 그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던 초기 뉴잉글랜드 회중주의(New England Congregationalism)사상(칼빈주의)의 계약 교리였고, 다른 하나는 1740년에서 1742년까지 사이에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이른바 '대각성운동(the great awakening)'에서 일어난 부흥주의 신앙이었다." 회중교회 계약교리에 의하면 교회에 속해 있는 교인들의 자녀들은 부모들과 "연대적으로 거룩하다는 것(federally holy)"이었다. 그래서 부쉬넬에 있어서 가정은 본질상 언약공동체(covenant community)로 이해한다. 즉 세 가지 신학적, 성서적 이유가 가정의 언약성을 뒷받침한다. 그 처음은 창세기 17장 7절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언약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한 언약은 신앙의 계보를 따르는 모든 가정을 위한 '믿음의 인침(seal of faith)'이 되었다고 이해한다. 손양원 목사도 칼빈의 언약 사상인 하나님의 주권성에서 나오는 언약 사상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상에는 신도 많고 주(主)도 많으나, 오직 내게는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는 어느 아무것도 없음을 감사한다. 여호와는 나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다 …. 나는 여호와를 왕으로 모시고 있는 천국 백성된 것이 감사하다…. 여호와는 우리들의 하나님이요, 우리의 아버지요, 왕이요, 또 목자이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들의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나게 하신다."

손양원 목사는 부쉬넬과 마찬가지로 창세기 17장 7절에 나타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언약을 믿는 하나님 주권성에서 나오는 칼빈의 언약 사상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손양원 목사는 교회를 가정의 연장으로 보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신앙의 계보를 따르는 모든 가정을 위한 '믿음의 인침'으로 이해한다. "가정을 떠나 별달리 가정 제도를 이룬 애양원이니까 우리만은 꼭 애합일체(愛合一體)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잠깐의 혈육의 부모인데 진부(眞父), 영부(永父), 영원(永遠)의 천부(天父)와 함께 됨이 애양원 교회의 교인들은 불행 중 다행자이다."라고 하여 교회는 가정의 연장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은 애양원 교회의 진부, 영부, 영원한 천부가 되셔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신앙의 계보를 따라 믿음의 인침을 받은 것으로 이해한다.


부쉬넬에 있어서 칼빈 사상의 영향인 가정은 본질상 언약 공동체로 이해하는 두번째 근거는 유아세례가 가지는 신학적 의미이다. 오랜 세월 교회가 실시 해 오는 유아세례는 처음부터 부모들의 신앙적인 약속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이로써 세례를 받은 어린이는 사실상 계수된 신자(accounted believer)로서 간주되어 온 것이다. 실질상 언약의 일원이 되었다는 증거로써 받아들인다.


유아세례는 언약 공동체로서의 기독교 교육적 보장과 가능성은 부모들의 신앙적 책임을 전제로 하여서 주어지는 것이다. 부쉬넬은 칼빈이 강조한 유아세례를 강조하고 있는데, 유아세례는 하나님의 예정과 언약에 의한 것이지만 동시에 자녀를 계속 양육해야 할 부모와 교회의 신앙적 책임에 있다고 믿는 칼빈의 신학을 그대로 믿었다. 부쉬넬은 유아세례의 근거를 세 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1. 유아세례 자체는 부모의 신앙 교육적 책임이 전제되어 있고,
2. 세례를 받는 자녀들은 이미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 있게 되며 이로써 자녀들은 영적 성장의 가능성 속에 들어온다는 것이며,
3. 유아세례는 하나님과 부모와 자녀 사이의 맺어진 언약과 신앙의 관계를 의미하며 그 관계는 계속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칼빈은 유아 역시 동일한 은혜의 언약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보면서 유아세례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또한 "그리스도는 유아를 초대하셨고 축복하셨다. 표적, 은총, 세례 등에서 유아를 제외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는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마 19:13-15)"고 하심으로 유아세례를 충분히 정당화하셨다고 칼빈은 보았다.


손양원 목사는 "어린아이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자이요, 날개 없는 천사들이요, 천국에 들어갈 자의 모형이 될만할 까닭이다."라고 하여 유아세례의 정당성을 주장한 것은 칼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또한 손양원 목사가 유년기와 아동기에 신앙교육을 받은 고향 칠원교회는 유아세례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칠원교회의 최초의 유아세례는 1911년 5월 28일 이치수 목사가 순회하여 학습 교인 10명 중 7명의 교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특히 손종일 집사의 셋째 아들 의원 어린이에게 유아세례를 주었다. 칠원교회는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면서 유아세례 받기를 권고 하였다.

유아세례를 침례교회나 오순절파에서는 시인하지 않고 부인하나, 성경을 오해한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제 28장 4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실제로 믿고 복종을 고백한 사람들뿐 아니라, 부모가 다 믿거나 한 편만 믿는 자와 유아라도 세례를 받을 수 있다(Not only those that do actually profess faith in and obedience unto Christ, but also the infants of one, or both, believing parents, are to be baptized)."고 했으며 예배 모범 제 9장 제 4항에 보면 "구약 때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할례를 받은 특권이 있었던 것과 같이, 복음의 은혜 아래 있는 성도의 자손에게 이 예식 행하는 특권이 있으니 그리스도께서 만국 백성에게 명하셔서 세례를 받으라 하셨고 유아들에게 축복하셔서 천국의 백성은 다 이와 같다 하셨으며……."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의 자녀는 지체없이 유아세례를 받아야 옳은 일이다.

손양원 목사의 자녀들도 부모의 신앙적 양육의 책임 하에 1928년 5월 30일에 장남 손동인이 맹호은 선교사로부터, 1931년 6월 3일에 차남 손동신이 예원배 목사로부터, 1935년 12월 22일 권남선 목사로부터 딸 손동희가 각각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이 유아세례를 통하여 손양원 목사는 자녀들에 대한 신앙교육의 책임, 영적 성장에로의 책임과 사랑의 관계로서의 책임을 수행하면서 점차 칼빈 사상인 언약 공동체화 되어 갔다.


부쉬넬이 가정을 본질상 언약 공동체로 이해하는 세번째 근거는 유아세례를 통하여 위의 세 가지 책임을 수행하는 가정은 그 자체가 '성령이 임재하는 집'인 것으로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하는 사랑'의 공동체로서 이해하는 데 있다. 부쉬넬은 이를 불러 '사랑의 유기체'라고 했다. 유아세례를 통한 하나님과의 언약을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를 보다 구속적인 것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쉬넬은 가정이 언약 공동체라는 이유 때문에 가정을 은총의 매개(a means of grace)로 이해한다. 손양원 목사도 칼빈 사상인 가정은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인 것을 인식하면서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신앙적 양육의 책임을 철저히 실천했으며 무엇보다도 언약 공동체인 가정은 기쁨과 사랑이 넘치고 성결된 가정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세상의 부귀영화 누리고 죄악과 불평으로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진리의 기쁜 생활하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 다음 셋째로 손양원 목사 가정 신앙 교육론을 조명하는데 있어서 부쉬넬의 기독교 가정 교육론을 사용한 이유는 부쉬넬 시대의 대각성 운동과 손양원 목사 시대의 대부흥 운동의 영향을 들 수 있다. 부쉬넬은 1740년에서 1742년까지 사이에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대부흥 운동의 영향으로 종교적 열광주의 상황 속에서 출생하여 교육받고 목회를 하였고 그의 신학을 정립하였다. 부쉬넬은 대각성 운동이 성인들의 의식적 회심만을 구원에 이르는 획일적인 길이라고 보는 부흥회의 일방주의는 결국 어린이들을 신의 약속으로부터 배제시켰고 또한 소외시키는 비극을 범했다고 비판했다. 강경한 칼빈주의 신학에 기초를 둔 부흥운동가들은 어린 아동이 기독교인이 되기는 불가능하다고 가르쳤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그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며 그들이 통절한 회심에 적합한 연령에 도달하였을 때 그제서야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께 응답해야만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 시기가 이르기 전에 아동의 죄성을 지속적으로 지적하여 후에 있을 회심을 준비시키는 것이 부모의 임무라고 가르쳤다. 그런 사상에 대한 반동으로 부쉬넬은 기독교인 부모들은 자녀들을 반드시 처음부터 기독교인이 되도록 길러야 한다는 기독교적 양육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부쉬넬은 대각성 운동은 교육적으로는 오히려 해악적이라고 보았다.


손양원 목사는 1907년의 대부흥운동의 열광적 상황 속에서 출생하여 교육을 받고 목회를 하였고, 그의 신앙을 정립하였다. 1907년 한국에서 일어난 대부흥 운동은 경건주의적 부흥의 원형에서 출발했다는 인상이 짙고, 따라서 그것은 저 먼 초대 한국교회 신앙의 원형에로 회귀했다고 볼 수 있는 운동이었다. 1908년 일본 주재 매소디스트 교회 감독 해리스(M. C. Harris)는 볼티모아에서 모인 매 4년마다 열리는 총회에서 아래와 같이 증언했다.

이 운동의 결과는 매우 좋다. 교회는 높은 영적 수준으로 올라갔고 미리 주의 깊은 성서교육 때문에 광신적인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신이 돈 일이란 한번도 없었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다 정상적인 상태이다…. 한 장소에서 200명이나 되는 많은 군중들이 모여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글읽기를 배우고 질문을 한다. 주정뱅이들, 도박꾼들, 도둑놈들, 간음한 자들, 살인자들, 스스로 의인 행세하는 유교 신자들, 죽은 거나 다름 없는 불교도들, 수천 명의 마귀 숭배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어 옛 것은 영원히 사라졌다.


이 모임의 결과는 전라도 지방에 넓게 그리고 깊숙이 파고드는 영향으로 작용한 것이다.

대부흥 운동의 본질은 전국을 휩쓸었고 그 결과 손양원 목사가 살던 경남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에도 1908년 4월 19일 손양원 목사가 7살 되던 해에 남구리 이현 속칭 배나무 고개에 초가 두 칸짜리 예배당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것이 최초의 예배당이며 이름은 구성리 교회당이었다. 대부흥 운동의 영향으로 구성리 교회가 크게 부흥할 즈음 1909년의 백만명 구령 운동으로 더욱 부흥의 불길이 타올랐다. 당시 한국교회 교인 수는 약 8000명이었는데, 칠원교회 교인 수는 30여 명이 되었으니 상당히 많은 수였다. 손양원 목사의 아버지 손종일 장로는 고향 칠원교회에서 장년주일학교 교장직을 17년간 맡아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신앙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손양원 목사의 성경중심사상은 1907년의 대부흥 운동의 영향이 크게 미쳤다고 본다. 아버지 손종일 장로로부터 가정에서 성경공부를 하였고, 교회에서도 성경공부를 철저히 시킬 때였기 때문에 성경공부에 의한 신앙양육이 이루어 졌으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손양원 목사의 성경 중심사상, 하나님 중심 사상은 더욱 확고해졌다. 한국에서 일어난 1907년의 대부흥 운동은 순수하였으며 선교사들은 교인들의 감정을 자극시키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는데도 회심의 효과는 매우 높았으며 아울러 성경공부에 의한 양육의 효과도 매우 컸으며, 부쉬넬 시대의 대각성 운동 시에 어린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 회심을 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하는 기독교 교육에 해악적인 요소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성경공부의 열기로 기독교적 양육에 의한 점진적, 과정적 회심의 효과를 얻음으로써 기독교 교육에 유익을 가져오게 되었다고 본다.


부쉬넬 시대의 대각성 운동은 칼빈주의를 감정이라는 매개로 신앙공동체보다 개인적 회심에 강조점을 둔 것이며, 손양원 목사 시대에 일어난 대부흥 운동은 칼빈주의를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와 이성을 매개로 한 회심과 양육에 강조점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방위량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대부흥의 불길이 고린도전서 12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진행된 점이 중요하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성례의 문제를 클라이맥스로 한 한 몸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전거(典據) 노릇을 한 구절이다…. 하나님과 개개 영혼의 인격적 관계의 개념에서 교회의 성례적 개념, 교회의 공동체적 개념으로 변했을 때 하나님과 만날 장소는 신도들의 공동체이지 골방이 아니라는 교훈을 한국교회는 체험하고 있었다. 결여되었던 성례의 의미를 한국교회가 발견한 것이다.

1907년의 대부흥 운동은 개인보다 신의 언약 공동체인 가정과 교회를 더 중요시했으며 그 언약 공동체 안에 속해 있는 성인이든 어린아이든 누구나 다 그 공동체 안에서 양육되어지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침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손양원 목사 시대의 대부흥 운동은 손 목사로 하여금 양육 이론을 기독교 신앙교육에 정립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손양원 목사의 아버지 손종일 장로와 손양원 목사 자신도 다 회심의 경험을 거쳤다. 손양원 목사는 자기의 회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는 예수를 믿게 된 이후 벌써 25개년 동안이나 되었다. 나는 그 동안에 천태만상의 신앙으로 복잡하였다. 여러 가지의 각 신앙 방면에서 오는 신앙관념에서 헤매이기도 하고, 나의 내적 실생활에 있어서 많은 의심과 고민 중에서 헤매였다. 그러다가 30세 되던 해부터 정통의 기독자가 된 것 같다.

부쉬넬은 대각성 운동의 반동으로 '기독교적 양육' 이론을 정립한 반면, 손양원 목사는 대부흥 운동을 통하여 회심과 양육의 이원적 기독교 가정신앙교육론을 정립한 점은 부쉬넬이 대각성 운동의 반동으로 정립한 양육 이론보다 기독교 교육에서 더 유익하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이 손양원 목사의 기독교 가정교육론을 호레이스 부쉬넬의 기독교 가정교육론에 조명하게 된 이유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생활은 편리해졌어도 정신적으로는 흑암의 세계를 헤매고 있는 이때에 교회로 하여금 기독교 가정신앙 교육의 중요성과 부모의 교육적 책임을 확인 일깨워 주고 현대가정 신앙교육에 교육적 시사점을 제시하여 기독교인 부모가 신의 뜻을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분위기'를 통해 자녀들이 자기중심 삶으로부터 해방되어 신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그래서 자신의 고통과 죽음까지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길러 나가도록 하는 바람직한 기독교교육의 방향이 시급히 설정되어져야 한다.


큰 인물 뒤에는 위대한 멘토(mentor)와 멘토링(mentoring)이 있었다. 손양원 목사 뒤에는 그의 아버지 손종일 장로의 멘토링이 있었고 또한 아버지보다 앞서서 순교한 동인, 동신 군 뒤에는 그의 할아버지 손종일 장로와 아버지인 손양원 목사의 멘토링이 있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에서 가정교육이나 서당교육 등 교육현장에는 관계와 관계사이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인격적 감화와 영향력이 사회적으로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산업화가 진전될수록 개인주의는 극에 달하고 그 틈을 타서 죄악이 밀려들어오고 가정공동체도 파괴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한국교회 교육과 기독교 가정교육 일반가정교육으로 하여금 가정교육의 아버지라 불리어지는 호레이스 부쉬넬의 가정교육 이론에 조명된 손양원 목사 가정의 가정 교육론이 멘토가 되고 멘토링 되어져서 바람직한 기독교 교육과 기독교 가정교육, 일반 가정교육 부재로 야기되는 제반 가정문제, 사회문제가 해결되어지게 하는 데에 본 논문 연구의 목적이 있다.

제 3 절 연구의 의의와 방법 및 연구 범위

기독교 가정은 공통적 신앙과 공통적 삶의 목적을 가진 가족으로 이루어진 신의 언약 공동체로서 이것은 신앙 공동체요,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이다. 그러나 오늘의 기독교 가정은 시대의 상황에 영향을 받아 변화되고 변천해 가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파생되는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기독교 가정에서의 교육은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으며 이로 인한 비인간화, 이기주의, 가치관의 혼란은 심각한 실정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기독교 가정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가정 교육을 담당해야 하는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본 논문의 주된 연구 방법은 문헌 연구와 면담 그리고 손양원 목사 기념관 방문 및 자료 고찰이다. 손양원 목사의 가정교육론 연구는 본 논문이 최초의 작업이기 때문에 자료 수집에 많은 한계점을 갖는다. 손양원 목사는 신학자나 기독교 교육학자나 저술가가 아니고 목회자로서 그의 삶을 실천으로 옮기면서 살다간 교육 실천가였기에 일차 자료는 물론 연구 서적도 거의 없는 실정이어서 자료 수집에 매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주어진 자료 즉 『손양원 목사의 설교집 上.下』그의 『체형조서』『옥중서신』그의 딸 손동희가 쓴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안용준의 『사랑의 원자탄』과 『칠원 교회 80년사』 및 그외 자료와 그의 순교 기념관 방문 탐사와 그의 후손과 애양원 교회 신도들과의 면담 등을 통하여 그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본 논문을 연구코저 한다.


그리고 그 외 기독교 가정교육의 각종 문헌과 연구자료들을 사용하였으며, 초기 전통 한국기독교 가정교육의 표본으로 손양원 목사의 가정교육을 다루었으며 가정교육의 이론은 부쉬넬의 이론을 중심으로 하였다. 초기 전통 한국 기독교 가정교육의 표본으로 손양원 목사의 기독교 가정교육을 본 논문에서 표본으로 설정한 이유는 손양원 목사의 가정이 다른 어떤 가정보다도 기독교 가정 교육과 도덕 교육 등 전인 교육이 실천적으로 아버지와 아들들이 순교하면서까지 그렇게 철저하게 가족 단위로 실행되어졌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 가정 교육론 연구 분야를 살펴보면 주로 구약 시대 유대 민족 가정 교육과 외국의 기독교 가정 교육 학자들의 교육론 분석 등이 주종을 이루었고, 초기 한국 전통적 기독교 가정의 가정교육을 표본으로 삼아 전문적 기독교 가정교육학자의 가정교육 이론에 조명하여 연구되어진 부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본 논문 연구자는 손양원 목사 가정을 표본으로 선정하여 부쉬넬의 가정교육론에 조명하고 적용시켜 현대 기독교 가정교육에 모델로 삼고자 한다.


손양원 목사는 목회자, 사랑의 사도, 순교자로서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기독교 교육자, 기독교 가정교육실천가로서는 조명되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본 논문에서는 손양원 목사를 기독교 교육자 및 기독교 가정교육 실천가로 조명하고자 한다. 즉, 손양원 목사가 그의 교육 행위에 있어서 기본적인 가정교육원리와 기독교교육철학의 원리를 가지고 그의 기독교 가정교육이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 논문에서는 손양원 목사의 가정교육원리와 교육철학을 살펴보고 장단점을 평가하되 그 평가의 기준의 한 틀로 호레이스 부쉬넬의 가정교육론을 사용코자 한다. 그 이유는 호레이스 부쉬넬이 가장 대표적인 기독교 가정교육학자일 뿐만이 아니라 손양원 목사와 마찬가지로 존 칼빈(John Calvin)의 영향을 상당히 받고 있으며, 시대적 배경에 있어서도 부쉬넬 시대의 대각성 운동과 손양원 목사 시대의 대부흥 운동, 그 이후에 따르는 양육의 필요성이 교차되는 시기에 목회 및 가정교육을 실천했던 점 등에서 의미있는 비교와 연결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본 논문의 연구 절차 순서는 다음과 같으며 본 논문은 전체 6장으로 구성된다. 제1장 “서론”에서는 본 논문의 목적과 문제의 제기 및 연구의 방법과 범위에 대하여 기술하며 제2장 “가정의 교육적 역할과 사명”에서는 기독교 교육의 중심 場이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의 가정의 교육적 역할을 강조하고 아울러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의 가정교육의 사명의 중요성을 기술하며 제3장 “부쉬넬의 가정 교육론 이해”에서는 부쉬넬의 가정교육 강조의 요인과 시대적 배경을 고찰해 보며 그의 생애와 신학구조를 통하여 그의 가정교육 이론을 고찰하고 평가해 보며 제4장 “손양원 목사 가정의 가정교육론 이해”에서는 손양원 목사의 생애를 살펴봄으로서 그의 총체적 삶을 통해 그의 교육사상을 이해하고 그의 생애에 많은 영향을 끼친 그의 아버지 손종일 장로와 주기철 목사와 그리고 1907년의 대 부흥운동에 대해서도 약술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의 교육사상과 가정교육의 내용, 방법과 교육실천을 살펴보고 초기 한국기독교 가정으로서의 그의 가정교육 내용과 방법 등을 부쉬넬의 가정교육 이론에 조명하여 평가 분석해 보기로 하며 제5장 “교육적 시사”에서는 교육 context의 변화에 따른 현대 기독교가정과 가정교육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살펴보고 부쉬넬의 교육이론에 근거한 손양원 목사 가정교육의 교육적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하며 현대기독교 가정교육의 새로운 방향모색으로서 교회와 가정의 유기적 관계를 지적 서술코자한다. 제6장 “결론”에서는 본 논문의 요약 및 제언과 더불어 손양원 목사의 교육사상 특히 손양원 목사의 가정교육이 갖는 현대적 의미를 생각해 볼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특기할 사항은 손양원 목사는 1907년 대 부흥운동의 영향에 의해 종말론적 신앙으로 일제하에서 모진 고난과 압제를 이겨 나갔으며 공산주의자들에게 순교까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쉬넬은 손양원 목사와 같은 강한 종말론적 신앙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부쉬넬의 경우에는 한국적인 시대 배경과는 다른 대 각성운동 전야에 정신적으로 미국 전체가 퇴락되었던 상황이었다. 김진환은 그의 저서 『한국교회 부흥운동사』에서 대 각성운동 전야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8세기말 사회는 종교나 도덕적으로 완전히 암흑 상태였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대학을 중심으로한 지성인들 사이에서 심각하게 퍼지고 있어서 불신앙 적인 문학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캠퍼스에는 그리스도인 학생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되었다. 대 각성운동의 부흥사들의 설교는 매우 준엄하여 죄가 관영한 곳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엄하게 경고하였다.

한국에서 일어난 대 부흥운동은 일제의 압제로 좌절과 낙심으로 소망을 잃어버린 국민들에게 소망을 심어주며 신앙의 힘으로 민족적 비극을 극복하기 위하여 내세(來世)를 강조하는 종말론적 신앙 상황과는 달리 대 각성운동 전야의 미국은 도덕적인 퇴폐, 윤리적인 나락으로 떨어졌기에 윤리적, 도덕적인 문제들을 신앙적 각성으로 재기하려는 것이었기에 1907년의 한국에서 일어났던 대 부흥운동의 상황과는 구분되므로 자연히 부쉬넬과 손양원 목사의 신앙사상에는 차이가 있다. 이런 경우 본 논문의 관심과 범위는 신학적인 대비보다도 교육사상(가정교육론)이다. 가정교육 이론의 아버지라 불리워지는 부쉬넬의 가정 교육 이론에 손양원 목사의 가정 교육론을 조명하여 양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손양원 목사의 가정 교육론의 학문적 가치를 규명하고 나아가 손양원 목사의 가정교육론이 현대 가정과 기독교 교육에 모델이 되게 함에 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제 4 절 선행 연구 고찰

호레이스 부쉬넬의 기독교 가정교육론에 조명된 초기 전통 기독교 가정의 표본으로서 손양원 목사의 가정교육론에 관한 연구 논문은 지금까지 없다. 다만 이홍술 목사에 의한 "순교자 손양원 목사의 윤리사상에 대한 연구"와 이광일 목사에 의한 "산돌 손양원 목사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연구"의 논문이 나왔을 뿐이다. 먼저 이홍술 목사에 의한 "순교자 손양원 목사의 윤리사상에 대한 연구"는 손양원 목사의 생애와 사상과 함께, 특히 그의 윤리 사상이 나타나 윤리 행위의 주체로서의 인간이해를 다루고 윤리 영역을 논술하고 있으며 손양원 목사의 사랑론에 있어서는 그의 삶 속에 나타난 사랑의 양태들을 다루고 있다. 이광일 목사에 의한 "산돌 손양원 목사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연구"는 손양원 목사의 전체적 삶과 그의 신앙사상을 다루고 있는데 그의 사랑과 순교정신 등에 관해 깊숙이 연구되어 졌다. 본 논문 연구자는 본 논문에서 그의 전 생애를 살펴보면서 지금까지 조명되어 온 위대한 경건의 사람, 훌륭한 전도자, 위대한 신앙의 용사, 사랑의 사도,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쓴 순교자로서의 손양원에 이어서 위대한 기독교 가정교육자 및 기독교 가정교육 실천가로서의 손양원 목사와 그의 기독교 가정교육론을 기독교 가정교육론의 아버지라 불리어지는 호레이스 부쉬넬(Horace Bushnell)의 기독교 가정교육 이론에 조명코자 한다. 손양원 목사의 기독교 가정교육론에 관한 연구는 본 논문이 최초의 연구작업이어서 많은 어려움과 한계점을 갖는다. 왜냐하면 손양원 목사는 신학자나 교육학자가 아니고 기독교 가정교육 실천가와 목회자로서 그의 삶을 실천으로 옮기면서 살아간 자였기에 1차 자료는 물론 그가 쓴 연구서적이 거의 없어서 자료수집에 매우 어려움이 있음을 밝혀둔다. 그러나 주어진 자료인 손양원 목사의 설교집과 그의 체형조서, 옥중서신, 안용준의 『사랑의 원자탄』, 그의 딸 손동희가 쓴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 칠원교회 80년사 등의 자료의 세심한 분석과 그의 순교기념관 방문 및 흩어진 자료수집, 그리고 손양원 목사의 후손과 손목사가 애향원 교회에서 목회할 때 가장 가까이서 목회를 도우며 손양원 목사를 너무 잘 아는 생존해 있는 분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손양원 목사의 교육 사상과 그의 기독교 가정 교육론을 기독교 가정교육론의 권위자인 호레이스 부쉬넬의 가정교육 이론에 조명하여 손양원 목사의 가정교육론의 장단점을 평가하여 다듬은 후, 한국 교회 기독교가정교육과 현대 기독교교육의 멘토(mentor)가 되게 하고자 한다.


특히 본 논문에서는 손양원 목사를 교육 실천가로 평가하는데 그 역점을 둔다. 교육은 이론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열매맺기 때문이다. 오늘 현대의 가정교육은 실천이 중요하기 때문에 손양원 목사의 기독교 가정교육론을 표본으로 삼아 연구코자 한다.

제 2 장 기독교 가정의 교육적 역할과 사명




호레이스 부쉬넬의 기독교 가정교육 이론을 중심으로 손양원 목사의 가정교육론을 연구함에 있어서 가정과 교육의 정의가 무엇인가를 이해하여야 하며 기독교 가정의 교육적 사명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될 줄 안다. 어떤 사람의 가정교육론 연구도 가정과 교육의 교육학적 원리와 기본 틀을 무시하고 연구되어질 수 없고 평가되어질 수 없기에 본 장에서 가정과 교육에 대해서 간단히 서술코자 한다.

제 1 절 가정의 정의

가족(family)이란 부부를 중심으로 한 혈통 관계로서 친자 형제의 인간관계를 중핵으로 하는 사회집단을 가리키며, 가정이란 여기에 집단의 실제의 구성 조건으로서 주거 기타의 경제적 문화적 자연적 제 인자를 포함한 것을 의미한다. 또한 머독(G. P. Murdock)의 정의를 보면 “가족이란 공동거주 경제적 협력 그리고 생식의 특성을 갖는 사회집단”이라고 하였다. 가족의 현실 형태는 시대와 국가를 달리하거나 또는 같은 시대 같은 국가에 있어서도 사회의 제 유형에 따라 혹은 생활 직업 계급 환경을 달리함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을 나타내지만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부부 친자 형제 관계 등에 있어서와 같이 가족이 혼인이나 혈액관계에 있는 근친 자를 중심으로 하는 일상생활의 공동체라는 점은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가정은 인류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집단이면서 가장 원초적인 사회집단으로서 개인이 태어나 성장하며 인격이 형성되어지는 터전이라 볼 수 있다.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이 지니고 있는 개개인의 능력과 자질이 가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발휘되고 발전되어 가정 속의 한 개인으로부터 사회 속의 한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일생을 가정 속에서 생활하여야 하며 사회적으로는 여러 세대를 통하여 사회적 문화유산과 전통이 가정을 통해서 이루어져 가게 되는 것이다. 호레이스 부쉬넬(Horace Bushnell)은 자녀들의 신앙적인 성장과 양육에 있어서 가정의 비중을 크게 강조한 사람이다. 그는 기독교 가정이야말로 신앙생활과 신앙교육의 중심지로 보았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 임재한 영은 자연히 어린이에게 침투된다고 보았으며, 한 가정의 신앙적 분위기가 신앙 인격의 형성에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손양원 목사의 가정관도 진리와 기쁨, 사랑이 가득차는 가정이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언약 공동체로서의 기초단위인 가정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신앙교육과 전인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가정이 인간 교육의 원초적인 장(context)이라면 기독교 가정은 한 인간이 태어나서 기독교인이 되어 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학습해 가는 원초적인 장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가정은 하나님이 인간과 맺은 언약 공동체의 기초 단위가 되며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은총의 통로로서 기능을 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가정은 일반가정과는 달리 기독교적 가치관에 기초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실현시켜 나가는 도구이며 선교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성서학자인 부르그만(W. Brueggeman)에 의하면 “성서적인 신앙으로 볼 때 가정은 세상에서 실재하고 형성화된 것으로 모든 것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이다. 각 개인은 가정에 소속되어 살다가 가정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 살아간다”라고 하였다. “가정은 인간형성이 이루어지는 최초의 중요한 교육의 장이다. 인간은 누구나 가정이라는 만남의 장소를 통해서 삶의 과정에 필요한 기초적인 행동양식을 배우고 인격을 형성해 간다.” 기독교 가정은 인격형성은 물론 영적 존재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도록 하는 작은 교회요 천국이며 교육의 장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에서 가정의 부재현상과 가정교육의 부재현상은 심각한 국면을 넘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부모의 자녀의 대한 가정교육의 책임은 시급히 회복되어져야 할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제 2 절 교육의 정의

교육은 인간의 성장발달을 조성하는 작용이며 이는 개개인간의 요구에 기초하고 있을 뿐 아니라 또 사회의 필요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본다. 교육은 사회를 위하여 사회에서 사회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사회적 성질을 가지고 있는 활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무엇인가를 만들고 찾고 이용하고 하여 항상 변화 발전함으로써 보람을 갖고 삶을 즐기게 되는 인간 본성에 적용되는 생활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교육을 통해서만이 해결할 수 있기에 교육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독일의 철학자인 칸트(Kant)는 “사람은 교육을 요하는 유일한 존재”라고 하였으며 그는 또한 “교육은 인간을 인간답게 창조하는 작용이다"라고도 하였다. 이 말은 사람은 교육을 절대로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하고 교육에 의해서 사람은 자연을 이상화하고 인간성을 회복하게 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또한 교육이란 자연계와 정신계에 걸쳐 생활하고 있는 소 우주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하기 위한 의도적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즉 교육은 인간 내면의 정신을 배양하는 힘이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귀한 본성을 완성시키고 이상적 존재로 개혁시키고 발전케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루소는 "에밀"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식물은 재배에 의해서 자라고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사람이 된다"라고 하였다. 20세기의 최대의 교육학자이며 생물학적 교육이론가 이기도 한 존 듀이( J. Dewey)는 생명과 생활경험 면에 교육의 중점을 두고 인간의 생물적 생명의 유한적이고 창조적인 면과 사회적 생명의 영속적이고 전달 적인 면이 합치되는 것이 인간의 전인적 생활이며 이것을 자유와 자연에 방임해 두는 것이 아니고 뜻 있게 선택하여 조정하고 이상화하는 것을 교육이라 하였다. 즉 교육은 계속적인 경험의 재구성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육의 정의는 경험을 통하여 인간행동에 가치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활동으로서 인간의 지식 이해 태도 기능 가치관 등의 행동변화와 기르고자 하는 인간행동에 관한 명확한 실천과 의식이다.다시 말하면 교육은 가치적인 인간형성의 작용이라 규정할 수 있다. 손양원 목사는 배운다는 것은 바르게살기 위함이고, 가르친다는 것도 바르게 사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즉 "배운다는 것도 그저 알기 위해서만이 아니고 살기 위함이고, 가르친다는 것도 그대로 지식을 전해준다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교육은 성장을 조성하고 바람직한 인간 행동에의 변화와 보다 나은 사회 구조 개혁을 위한 인간형성의 과정이라 하겠다. 특히 기독교 교육은 진리만을 가르칠 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같은 인격형성으로 이끌어 가는 과정이다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를 믿어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요 자기이해와 자기의식에 대해 더 많이 알게 하여 자신의 가능성 실현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호레이스 부쉬넬은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경건 안에서의 성장'을 말하며 이렇게 자라난 어린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인격자가 된다는 것이다.

제 3 절 가정교육의 중요성

가정이란 자녀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속되는 사회이며 부모 형제간에 평생을 두고 상호간의 인간관계를 통하여 가르치고 배우는 원초적인 학습의 장이다. 고대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히브리, 로마, 중국 등은 가정교육에 가장 큰 중점을 두었으며 근세에 이르러서는 코메니우스, 루터, 루소, 페스탈로치 등은 가정교육을 중시하였다. 페스탈로치는 "좋은 아버지가 된 후에야 좋은 행정관이 될 수 있고 좋은 형이 된 후에야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정의 일이 사회 국가의 일에 앞서야 하며 가정교육이 시민교육에 앞서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페스탈로치만의 생각은 아니다.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동부 아시아 지역에서는 세계의 어느 지역보다 가정교육이 강조되어 왔다. 이것은 페스탈로치가 인간교육의 기초를 가정에 두고 생활 중심적인 교육 사상을 전개한 가장 중요한 인식이기도 하다.아동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가정과 집단의 문화적인 양상에 따라 생활하고 습관, 역할규범, 규칙 등을 배우고 모방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을 살펴보면 바람직하지 못한 가정환경과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 부족 즉 가정교육의 부재 등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핵가족화 현상은 가족구성원들 사이의 분열을 가져오고 가족원들간의 갈등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혼율은 해마다 15%∼20%씩 증가시켜 주고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사회가 오늘날처럼 산업화가 되기 이전에는 가정의 도덕적 통제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요사이는 종래 가정에서 하던 도덕적 훈련을 가정 이외의 그 어느 곳에서도 하고있지 못하다. 도덕적 규제력을 가정이 잃고 있다면 가정 밖의 어느 기관도 마찬가지로 그 규제력을 잃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기대하고 기대할 곳은 가정이며 이를 대신할 다른 곳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다시 요약하면 청소년 범죄의 문제, 유아교육의 문제, 사회적 혼란을 치유하고 예방하며 올바른 인간형성을 위한 길은 오직 가정교육에 의해서 이룩될 수 있다. 그런데 요사이 문제는 전통적인 가정 교육에서 탈피하려는 과도기적인 형태와 성격이 가정교육의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다. 전통적 가정교육에는 인내력 예의범절 가치관등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많다. 전통이란 먼저 세대로부터 후대에 이어져 내려와 현재세대의 존속과 발전에 적극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일시 유입되었다가 사라지는 유행과는 다르다. 그것은 그 강한 힘을 기저에 갖고 후대에 대하여 규제적으로 작용하며 그 영향력은 한 집단의 문화발전에 일관적이고도 지속적이다.이것은 정신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으리 만한 원동력으로 후대에 미치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나라에서 개화교육 이후에 전통문화의 단절과 외래문화의 무비판적인 수용으로 전통은 서서히 각 분야에서 붕괴되고 있으며 가치관의 혼란도 더욱 가중되고 있다.


가정의 위기는 사회적인 불안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기독교 가정이 사회 제도로서가 아니라 신적 기관으로서의 존재의미를 찾아야 한다. 특히 우리 나라 초기 전통 기독교 가정인 손양원 목사 가정의 가정신앙교육을 고찰해 봄으로서 현대 비기독교 가정과 기독교 가정의 가정교육의 문제로 야기 된 제반사회 문제들을 극복하고 해결해 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한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 즉 신적 기관으로서의 가정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종말에 가서는 창조와 은총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신적인 존재 의미를 찾는 것이라 본다.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 땅에서 왕적 직무를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정에 자신의 대리자로 부모를 세우셨다. 에베소서 6장을 보면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할 것을 말씀 하셨다. 급변하는 사회현상에 직면하여 가정이 그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되찾아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형대로 회복하도록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 가정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나아가서 현대의 가정들은 생명의 잉태와 양육의 기능뿐만이 아니라 가족 안의 병약하고 노쇠한 자들에게 베푸는 사랑과 위로로 인류사회의 영원한 보금자리가 되게 해야 할 책임이 기독교 가정과 기독교 교육에 부과되어 있다.

제 4 절 기독교 가정의 교육적 사명

자녀를 둔 그리스도인 부모나 비 그리스도인 부모 양쪽 다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은 매우 크다. 특히 청지기로서 자녀들을 훌륭히 양육하여 이 세상에 파송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그리스도인 부모들의 고민은 심각한 것이어야 한다.


부모들의 이 같은 고민과 관심과 욕구에 따라 많은 교육이론과 학습방법이 연구 발표되어지고 있기는 하나 이 같은 교육이론과 학습방법은 인격교육이나 인간성 함양보다 똑똑한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드는 데만 치중하는 경향이 크다. 다시 말하면 오늘의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은 철저히 인본주의적 세계관 즉 그 기원과 목적에 있어서 인간 중심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에 근거한 자녀 교육을 강요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는 기독교적 전인교육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그리스도인들조차 비 그리스도인들과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자녀양육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인본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우리의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비 성서적인 일이요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일이다.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확신 있고 효과적으로 양육하여 "빛과 소금"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오염되어 썩어 가는 이 사회를 구하고 진리의 파숫군의 역할을 감당하는 인물로 양육하기 위해서는 인본주의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진리를 소유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성경 적인 사고방식을 갖게되고 이러한 사고방식을 소유할 때 비로소 모든 양육에 필요한 교육적인 틀을 형성하게 된다.


기독교 가정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귀한 자녀들을 죄 많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할 막중한 책임을 재인식해야 한다. 농경시대의 가치관은 붕괴되어 버렸고 산업혁명 시대의 가치관은 아직 정립되지 못한 채 또 다른 시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가치관의 혼란”“가치관의 진공상태”라는 말은 예사 말처럼 되었고 이러한 상태의 결말은 인간생활을 무서운 곳으로 몰고 가기 마련이다. 한국초기의 기독교 가정과 교회는 가치의식을 상실하지 않았다. 유교와 무속 종교를 바탕으로 형성된 전통적 가치관을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기독교인 부모나 기독교인 모두는 가치 변혁의 교사로서 일하였다. 그것은 곧 개화라는 것으로 집약된 가치체제였다. 이렇듯 한국 초기 교회와 기독교 가정의 모습에서 기독교 진리에 기초한 생활원칙을 정립하려고 애썼음을 알 수 있다. 한국교회와 기독교 가정은 아직도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 하루속히 가치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물질위주 경쟁위주 개인주의 향락주의에 침몰되어 가는 오늘 현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교훈과 그 모범에서 보여주는 가치체계를 확립하는 일이 기독교 가정교육과 기독교 교육의 중대한 과제이다.


"이스라엘의 아이덴티티(identity)가 영토와 주권 없이도 2400여 년 동안 여전히 유지될 수 있었던 근본 원동력이 교육이었고 이러한 교육은 절대적으로 가정이 중심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로서 가정에서의 종교교육의 절대성을 입증해 준다.” 부쉬넬은 그의 저서 『기독교적 양육(Christian Nurture)』에서 부모의 정신과 성격이 자녀의 생활과 성격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장소로서의 가정이 기독교 교육의 중요한 장이 됨을 부각시켰다. 기독교적 가정에는 바로 기독교적 교육 사명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가정이라는 만남의 장소를 통해서 삶의 과정에 필요한 기초적인 행동양식을 배우고 인격을 형성해 간다. 교육기관이 생기기 이전에는 가정이 교육을 책임지는 유일한 장소였고 부모는 최초의 교사로서 자녀에 대한 교육적 책임을 수행하였다." 가정의 교육적 사명은 창조 이후로 강하게 주장되어 왔으며 교사로서의 부모 역할도 중시되어 왔다. 특별히 기독교 가정은 신앙의 바탕 위에서 성경의 진리에 입각한 전인교육에 그 존재목적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목적은 무너지고 인본주의에 기초를 둔 비 성서적인 방향으로 궤도를 잃어버리고 표류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가정교육의 바탕을 철저히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두고 그 성경 말씀의 진리를 그대로 실천하도록 하여 기독교적 전인교육에 모범을 보인 손양원 목사 가정의 가정교육을 고찰해 봄으로써 가치관의 혼란을 바로 잡고 기독교 가정교육의 목표와 내용과 방향을 분명히 확립하고자 한다.


오늘날의 기독교 가정들은 기독교 가정의 교육사명을 가정으로부터 교회로 옮기려하고 있으며 이러한 교육기피 현상은 기독교 가정들을 결국 심각한 상태로 몰아 넣고 있다. 신명기 6장 1-2절은 특별히 기독교 가정의 교육적 사명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은 하나님께서 가정에 주신 명령으로 부모는 자녀를 신앙으로 교육할 책임이 있으며 그 장소가 바로 가정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가정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독교인 양육의 중심지이며 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에 있어서 제일의 모델인 것을 알고 교육에 임해야 한다. 가정교육은 교회와 사회와 국가를 위한 원천을 마련해 주고 교회 봉사와 사회 공헌의 기초를 형성해 준다.


가정 없이는 교회도 국가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안정과 신뢰를 경험함을 통해서 자녀들이 잘 성장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교육의 장으로서의 가정의 교육적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야 할 것이다.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사람들을 생명을 주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에게로 인도하고 그에게 응답하도록 하는 것이며 또한 기독교 교육의 임무는 피교육자들이 그리스도 및 성서적 사건들 그리고 교회공동체의 연속적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그의 뜻에 응답해 갈 수 있는 인격으로 교도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시대상황은 기독교 가정의 존재이유를 더욱 분명히 하여주고 있다. 시대가 혼란하고 삶의 상황에 고통이 올수록 바른 삶 그리고 가치 있는 삶이 요구되고 있다. 기독교 가정이 현실세계에서 그리스도의 뜻과 사랑·소망을 전달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을 바탕으로 신앙의 구체화 작업을 조속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가정의 교육적 사명은 현시대에서 매우 중요하며 크다고 볼 수 있다.

제 5 절 가정의 교육적 역할

가정은 비록 공식적이고 학교 식의 교육은 아니지만 학교 식의 교육이 할 수 없는 부분 즉 더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신앙 양육의 부분을 담당한다. 먼저 가정은 처음의 신앙적 경험을 제공한다. 부모로부터 가정 생활에서 어린아이는 처음으로 신앙을 경험하며 이는 엄청난 중요성을 가진다. 일평생 가장 중요한 형성의 시기(the most formative years)가 가정에서 만들어지며 가장 가까운 삶의 관계가 여기서 맺어지기 때문이다. 부모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제일 중하게 여기는 가는 아이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손양원 목사의 아버지 손종일 장로가 처음 복음을 받고 신앙생활을 할 때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생명보다 더 중요시 여기고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아오신 것을 손양원 목사는 지켜보았고 드디어 깨닫게 되었고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신앙으로 그대로 형성되었고 아버지 손양원 목사의 신앙을 그의 아들 동인, 동신 형제가 어릴 때부터 지켜보았다. 아버지인 손양원 목사의 애국심과 하나님 말씀의 중심 생활과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신실한 일꾼의 모습과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버림받은 나환자들을 자기 가족보다 더 사랑하는 사랑의 모습 그리고 불의 앞에 절대로 굴하지 않는 강인한 신앙의 투지를 그의 두 아들 동인 군과 동신 군은 보았기에 그들도 그의 부친의 신앙을 이어받아 끝까지 불굴의 신앙의 지조를 지켜 순교의 자리에까지 나갈 수 있었다. 가정에서의 부모의 신앙의 실천의 모습은 자녀들에게 이와 같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가정 이외의 여러 교육 기관들이 나타난다. 즉 학교, 교회, 또래 집단, 사회 등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의 교육적 역할이 다른 것으로 온전히 대치된다거나 소멸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성인이 된 다음에도 가정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신앙의 발달 이론으로 유명한 제임스 파울러(James Fowler)에 따르면 일평생의 신앙의 성장에 있어서 0세에서 4세까지의 영아기는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말한다.


이 시기는 신앙 이전의 단계로서 무의식적으로 신앙의 기초를 형성하는 시기이다. 비록 영아들은 언어나 개념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만큼 그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며 지속적이다. 이 시기에 영아들은 신뢰나 불신 용기나 비겁 또는 희망이나 절망과 같은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들을 배우게 된다. 이 시기에 주위로부터 특히 부모로부터 어려움을 겪으면 그들의 신앙도 어려움을 겪는다.


이 시기는 에릭슨(Erik H. Erikson)의 지적과 같이 신뢰를 형성하는 시기이다. 자신을 신뢰하고 세상을 신뢰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배운다. 이때에는 주위 사람들 특히 부모에게 크게 의존되어 있음으로 인해 주위사람들의 역할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돌봄을 받느냐에 따라서 신뢰 형성이 좌우된다. 버림을 받을까 하는 두려움 아무도 나를 돌보아주지 않는다는 두려움이 가장 큰 시기인 만큼 부모나 교사는 이를 잘 이해하고 항상 이들 주변에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이들의 기본적 욕구들(특히 신체적 욕구들)을 잘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신뢰를 형성할 경우 자신과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과 세상 나아가서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인하여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시기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다는 사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근본적인 신학적 내용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 이유로서 이 시기의 신앙은 주로 부모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으며 그 영향이 무의식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렇게 본다면 아무리 그 이후의 교육이 중요하다 할 지라도 가정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다음으로 가정은 신앙이 경험되어지고 실천되어지는 환경을 제공한다. 신앙은 실천되어지고 경험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삶과 경험은 가장 중요한 신앙 교육의 방법이다. 손양원 목사 가정의 신앙교육의 방법은 바로 신앙이 경험되어지고 실천되어지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가르침에 의한 교육은 신앙의 형성과 양육에 지극히 제한된 영향력을 가진다. 하나의 지식이 신앙으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한다. 지적으로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느끼며 행동으로 통해서 표현되고 나아가서 지속적인 반복으로 삶과 인격의 일부가 되어야한다. 이렇게 볼 때 학교 식 교육의 한계는 명백하다. 반면 가정에서의 삶을 통한 교육은 신앙형성과 성장에 가장 적합한 모습을 갖는다. 여기에는 지속적인 반복과 실천이 있으며 부모에 의한 모범이 있다. 부모가 가정에서 행하는 모습이 바로 신앙 교육이다. 말로서 행동으로서 그리고 삶으로서 신앙을 가르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정이 곧 교회라고 말하는 쉐릴(Helen Hardwicke Sherrill)의 말은 지극히 타당하다. 그녀는 교회란 건물이나 목회자나 주일예배가 아니라 온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약속하고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로 약속한 계약 관계에 들어간 백성들이라고 말한다. 교회는 이 약속을 성령을 통해서 기꺼이 이루려는 우리 자신들이라고 말하면서 부모로서 우리의 마음을 매일 그리스도에게 드리고 그 분을 닮아 가도록 도움을 구하며 한 부모라도 주님께 헌신하기로 한다면 그 가정은 바로 교회라고 말한다.
셋째로 가정을 통해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신학적인 개념들을 배운다. 가정의 관계는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게되는 최상의 통로일 뿐 아니라 거의 유일한 통로이다. 윈(J·C Wynn)은 가정을 통해 다음과 같은 신학적 개념들을 배운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먼저 구속을 배운다. 가정에서의 관계를 통한 구속의 경험은 하나님의 경험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이를 경험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을 깨닫는 중요한 터전을 갖게 된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또한 생각해 보자. 물론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경우가 어디에 또 있겠는가? 용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많은 사회 경험에서 용서를 경험한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 동반된 용서 즉 자신을 희생하는 용서는 부모나 가족간의 관계를 통해서 가장 잘 배워진다. 화해도 마찬가지이다. 가족간의 화해는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화해를 먼저 할 수 있는 용기를 길러주며 화해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학교 식에 근거한 교회교육은 신앙에 대해 지식적으로 말하거나 설명할 수는 있어도 신앙을 교육할 수는 없다. 신앙교육을 위한 지식의 힘은 너무나 초라할 뿐이다.


한 번 가정에서 부모를 통해 형성된 신앙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이는 이미 우리의 삶과 인격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며 경험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경험으로 인해 충격을 받기 전에는 좀처럼 고쳐지지 않으며 충격을 받아도 변화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고 학교 식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해서는 안될 것이다. 학교 식은 우리의 경험에 대해 성서적인 가르침으로 바로 정립하고 그리고 그 의미를 일깨워 준다. 그러나 아무리 학교 식의 교육이 훌륭하다 해도 가정을 떠나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학교 식의 교육 패러다임을 지나치게 의존하고 이로써 지식 중심의 신앙을 형성하며 대신 가정을 등한히 하는데 오늘의 교회 교육의 문제가 있다.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가정의 교육적 역할이 소외된 것은 첫 번째로 기독교 교육이 학교 식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문가에 의해서 교실이라는 환경에서 교재를 통한 지식 전달이 중심이 되는 학교 식의 교육이 교회 교육의 터전이 되면서 자연 비공식적이고 비전문적이며 나아가 삶과 경험중심의 가정교육은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로 우리는 부쉬넬이 지적한 복음주의의 극단적 이기적 신학 또는 초자연과 자연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신학의 영향을 지적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도 초기의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고 있다. 부흥운동은 근본적으로 가정의 신앙 양육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들에게는 공동체보다는 개인이 성장보다는 일시적 회개가 더 중요한 관심이다. 따라서 부쉬넬이 주장했듯이 이들의 신학과 가정의 양육은 병행되지 않는다. 동시에 기독교 교육의 터전과 중심은 지식이나 교리로서의 신앙이 아니라 삶으로서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 손양원 목사의 가정교육은 이론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현대 기독교 교육과 가정들은 재음미함이 마땅하다. 이제 기독교 교육은 가정의 교육적 역할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신앙을 교육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삶이요 인격이며 이는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가정을 통해서 일평생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가정이 더 이상 가장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중심에 자리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들은 주님께로부터 주어진 교육의 책임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다음으로 교회 교육은 가정이 교육적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노력 또한 기울여야 한다. 지금과 같이 개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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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magoDei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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